금융당국, 당정협의 통해 코로나19 대출 만기·이자상환 연장 결정
업계 “예상된 결과, 충격 크지 않을 듯”···정치권 압박 등 우려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당국의 코로나19 지원대출 만기·이자상환 재연장 방침에 은행권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코로나19 확산 정도와 방역 단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유예조치는 어느정도 예상됐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그 결정 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듯한 모습은 많은 우려들을 낳고 있다. 금융당국은 내년 3월 대출 만기·이자유예 연장 조치를 종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 정치권의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어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소기업·소상공인 금융지원 당정협의’를 열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코로나19 지원대출의 만기와 이자상환 유예를 내년 3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3월 이후 3번째 연장 결정이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장은 “당정은 코로나19 확산세 지속 등에 따른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감안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의 6개월 연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며 “정부는 금융권과 협의해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연장하고 조치 연장에 따른 잠재부실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고승범 금융위원장 역시 “7월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영업 애로가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음식·숙박·여행·도소매 등 내수 중심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어 지원 연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며 “향후 질서 있는 정상화를 위해 보완 방안을 마련해 시행토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구체적인 연착륙 방안과 채무조정 지원 방안, 정책금융 유동성 공급 방안 등은 내일(16일) 예정된 금융협회장과의 간담회 이후 구체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고 위원장은 내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과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정지원 손해보험협회장,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등 6대 금융협회장과 취임 후 첫 간담회를 가진다.
은행권은 이번 연장 결정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실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 이자상환 유예 조치만은 종료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난해 1차 연장 당시부터 수 차례 전달해왔지만 금융당국은 한 번도 이를 수용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결정 역시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실 위험에 대한 얘기를 하루 이틀 해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번에도 별 다른 기대감이 없었다”며 “만약 종료 결정이 나왔으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대한 이자 상환 외에 다른 지표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미 각 영업점에 관리를 위한 일종의 자체 가이드라인을 내려 시행하고 있고 그 기간도 오래됐기 때문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출 기업에 적극적으로 연락·방문을 해 영업 현황 등을 체크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예방을 하고 있다”며 “현업 부서에서도 이전보다는 (연장 결정의) 충격을 덜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그렇다고 부실의 위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규모가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총 222조원의 코로나19 지원대출이 중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제공됐으며 이중 209조7000억원의 만기가 연장된 바 있다. 원금상환이 유예된 규모는 12조1000억원, 이자상환이 유예된 규모는 2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금융당국의 전문가들보다는 정치권의 의견이 크게 개입된 결과로 보고 있다. 애초에 금융위는 16일 금융협회장 간담회까지 마무리한 이후 재연장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됐다.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종료라는 ‘투 트랙’ 방안도 거론됐으나 당정협의 이후 현재의 결론이 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내년 3월 종료 여부도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내년 3월은 4월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포퓰리즘 정책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역당국의 계획대로 위드(With) 코로나가 정착될 경우에는 만기·이자상환 유예 종료가 문제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한 번 정치권이 정책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는 규제대로 강해지고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대출에 대한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소 답답한 상황”이라며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의견을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자 상환 유예는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