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 위상 갈수록 하락, 올해는 1달 근무 사례도···오너, 인식 개선 시급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명색이 전문경영인인 김정호 사장에게 일성신약이 해준 게 무엇인가? 대표이사 직책도 주지 않고 실적 향상만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김 사장과 지인 사이인 약업계 한 인사의 지적이다. 일성신약이 규모가 작은 제약사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법한 부분이다. 하지만 일성신약은 부동산 사업을 진행할 만큼, 자금 면에서 여유가 있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일성신약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이정도만 하겠다. 다른 제약사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이 지난해 9월 비보존 헬스케어에 인수되면서 사명이 변경된 비보존제약의 경우 올 3월 박홍진 대표가 사임했다. 이어 6월에는 최재희 대표가 물러나며 고문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최 대표의 경우 재임 기간이 한 달에 불과하다.
현대약품 대표를 역임한 김영학 삼아제약 대표 역시 한 달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삼아제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된 리도멕스 약국 재고 반품 문제와 밀어내기식 불법 영업과 관련, 대한약사회와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올해 몇몇 전문경영인이 대표 자리를 물러났다.
물론 비보존제약과 삼아제약은 극단적 사례라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 관운이 중요하듯이 공교롭게 운때가 맞지 않아 벌어진 극소수 경우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자는 이 같은 사례가 우연의 일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을 영입하며 대표이사 직책과 그에 걸맞는 권한을 주지 않는 것은, ‘회사 주인은 바로 오너’라는 인식이 지나치게 강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제약사 주인은 오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 사실을 오너가 고집스럽게 강조한다면 어느 전문경영인이 따를지 의아스럽다.
능력과 실력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전문경영인은 글자 그대로 경영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을 지칭한다. 제넥신은 해외 유수한 헤드헌팅사와 계약까지 하며 현재 우수한 전문경영인을 찾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다하며 영입한 우수 인력을 짧으면 한 달 만에 물러나게 하는 최악의 사례가 올해 제약업계에 있었다.
기자는 그 원인을 보수적이고 제왕적인 기존 제약사의 오너 책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창업주의 2세나 3세들은 30대든 40대든 능력에 관계 없이 대표이사 사장 또는 대표이사 부회장 직책까지 척척 내주면서 전문경영인에게는 왜 그리 인색한 것인지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앞으로 제약사 오너들은 본인들이 전면에 나서 경영했으면 한다. 그게 아니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한다면 최소한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라도 취했으면 좋겠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몰라도 대외적으로는 영입한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부여해야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경영인을 잘 활용하는 오너가 향후 능력 있는 오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