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까지 항소 여부 결정···1심 재판부, 금감원 징계 권한은 인정
6개 금융협회, 내부통제 관련 자율규제 권한 요구···시민단체는 항소 촉구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의 DLF(파생결합펀드) 징계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금융감독원이 항소 제기 여부를 놓고 고심에 휩싸여 있다. 1심 판결을 계기로 금융사들이 금감원의 금융사 임직원 징계 권한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항소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할 경우 그동안 DLF사태, 사모펀드 사태 등에서 내렸던 임직원 징계의 명분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소비자 보호’를 외면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 제기 역시 금융사와의 관계 악화, 패소 가능성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선택 모두 금융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1심, 금감원 징계 정당성은 인정···“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임직원 제재처분 사유 돼”
1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1심 판결이 내려졌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금감원의 ‘문책경고 등 취소청구의 소’의 항소 제기 기간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1심에서 패소한 금감원은 오는 17일까지 항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 법무부 보고 절차 등을 고려하면 16일까지 항소 제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의 항소는 법무부의 지휘를 받게 돼 있다.
1심 판결문이 공개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금감원이 항소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제기됐다. 1심 재판부는 금감원이 징계의 이유로 들었던 5가지 사안 중 단 하나만이 처분 사유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지만 금감원의 제재 권한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기 때문이다.
1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는 판결문을 통해 “금융사지배구조법 제24조에 따라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할 법적 주체는 금융회사이지만 실제로 그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는 금융회사에 소속된 대표이사, 이사 등 기관에 해당하는 자연인”이라며 “금융회사가 제24조에 따라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경우, 그 내부통제기준 마련과 관련된 의무를 지는 임직원에 대해 위 각 규정에 따른 제재처분의 조치사유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에 대한 결정 권한이 금융감독원장에게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35조 3항을 근거로 은행, 보험사, 여전사 임원의 제재조치는 금감원으로 하여금 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징계 행위의 정당성은 인정했지만 그 수위가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금융사, 사후 징계 위주 감독 방식 개선 요구···금감원, 패소 가능성도 ‘부담’
금융사들은 이러한 1심 판결을 의식한 듯 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금감원의 징계 권한을 낮추기 위한 압박에 나섰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개 협회는 지난 6일 각 금융사의 이사회가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결함을 점검하고 임직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하는 ‘금융산업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을 금융당국에 제시했다. 1심 판결을 계기로 사후 징계 위주의 감독 방식을 사전 예방 방식으로 개선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감원이 DLF 행정소송 항소를 결정하게 되면 사후 징계 위주의 감독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금융사와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정은보 금감원장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패소의 가능성 역시 큰 고민 거리 중 하나다. 만약 1심에 이어 2심에서까지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면 금융사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감독 권한이 지금보다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항소를 할 경우 그 기간 동안 사모펀드 관련 임직원 징계 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업계 전체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등은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았지만 금융위에서 오랜 기간 최종 징계 수위가 결정되지 않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심에서도 결국 CEO의 책임과 잘못이 중징계를 받을만큼 위중한 것인지가 관건일 것”이라며 “상품설명절차 생략 등 1심에서 대부분 인정받지 못한 처분 사유들을 다시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항소 포기시 ‘소비자 보호 외면’ 비판 직면···시민단체 “금감원, 강력한 의지 보여줘야”
반면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우선 금감원이 항소를 포기하면 ‘소비자 보호’ 가치를 외면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미 금감원이 오랜 기간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시민단체에서는 날선 비판들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경제개혁연대, 경제민주주의21,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등은 지난 6일 공동으로 금감원의 항소 제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지난 10일에는 금융정의연대가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금융정의연대 측은 “DLF사태의 피해 정도와 강도를 감안했을 때 금감원의 제재가 과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법원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는 있지만 준수 의무는 없다’는 궤변으로 금융소비자를 외면했다”며 “법의 취지와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금융사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법원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감원은 법원의 무지하고 부당한 판결에 반드시 항소해 손태승 회장에 대한 제재의 타당성을 확고히 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감원의 항소 포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과의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함 부회장 역시 손 회장과 마찬가지로 DLF사태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았으며 행정법원에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항소 포기는 DLF사태에 대한 과도한 중징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함 부회장과의 소송도 함께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