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감치명령 등 회피하려 위장전입·폐문부재 사례 많아
통지·송달 효력 발생 시기, 도달한 때 아닌 ‘발송한 때’로 개정
‘허위 주소 기재 악용’ ‘채무자 참여권·방어권 침해’ 등 우려도

/ 일러스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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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소송 절차를 위장전입 등을 통해 회피하는 꼼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절차 지연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한 법률안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됐다.

양육비 확보를 위해 신속한 재판과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이 있지만, 채권자의 주소 허위 기재에 따른 부작용이나 채무자의 방어권 침해 등 우려도 제기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위장전입, 고의적인 소장 미접수에 따른 소송방해의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이른바 ‘공시송달 특례법’이 전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가사소송법 및 민사집행법에 따른 양육비 청구·이행 및 집행에 있어 통지 또는 송달의 효력 발생시기를 ‘도달한 때’가 아닌 상대방의 주소에 ‘발송한 때’로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장전입이나 폐문부재를 통해 서류를 고의로 교부받지 않는 사례를 막고, 양육비 확보를 위한 신속한 재판과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발송송달’을 인정하려는 취지다.

통상 비양육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법원의 ‘이행명령’이 내려지고, 이행명령을 받고도 이를 어길 경우 ‘감치명령’이 내려진다. 감치명령 이후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강화된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명단공개, 출국금지, 형사처벌과 같은 조치가 가능하다.

문제는 채무자가 법원의 통지 또는 송달을 회피하는 경우 강화된 처벌이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감치명령의 경우 사람의 인신을 구속하는 집행력을 갖고 있어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해야하는데, 위장전입이나 폐문부재로 전달되지 않으면 더 이상 후속조치가 불가능해진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 채권자는 수년간 소송을 통해 양육비 이행명령과 감치명령을 받아내더라도 채무자가 소장이나 결정문을 받지 않으면 후속절차가 불가능한 상황이다”며 “수백에서 수천 건으로 추정되는 소송 중 감치명령까지 실제 이뤄졌다고 집계된 사례는 지난 8월까지 총 8건에 불과하다. 감치명령이나 후속조치가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이에 문제점을 인지한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번 공시송달 특례법을 발의했다. 공시송달로 절차가 진행될 경우 이행명령과 감치명령이 속도를 내고, 채무자 제재를 규정한 양육비이행강화법이 실효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 이행확보의 소송의 경우 송달 회피로 상당 기간 소송이 지연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어 개정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며 “채무자의 재판청구권이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비해 크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개정안에 동의한다”고 의견을 냈다.

법안의 긍정적 동기에도 불구하고, 공시송달은 채무자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법안을 검토한 여가위 수석전문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공시송달은 다른 송달방법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인정되는 보충적이고 최후의 송달방법이다”며 “공시송달 신청자가 송달 상대방의 실제주소를 알고 있음에도 허위의 주소를 기재해 송달불능이 되도록 한 뒤 승소판결을 얻어내는 등 악용될 소지가 많아 엄격한 요건 아래서 실시되어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또 “일반적으로 공시송달의 경우 송달받을 사람이 그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점에서 양육비 채무자의 재판절차 참여권, 방어권의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개정안이 발송송달의 적용 범위에 양육비 청구사건도 포함하는 취지라면, 재판을 통해 양육비 채무자가 확정되기 전임에도 양육비 청구사건의 피고라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재판청구권 침해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송달을 회피하려는 의도 없이 생업을 위해 해외에 체류한 경우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입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도윤 양해연 부대표는 “감치명령과 형사처벌 등은 양육비를 미지급시 채무자를 제재할 수 있는 최종적인 절차로 최소 2년~4년이 걸린다. 채무자는 공시송달 이전부터 소명기회를 충분히 부여받았다고 보아야 한다”며 “채무자의 재판청구권 보장만을 이유로 채권자의 집행권과 아동의 복리 보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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