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팀장 A씨 4년 연속 인사평가 ‘저조’
항소심 “A씨 인사발령, 육아휴직 때문이 아냐”
“압박해 못 견디게”···홍원식 추정 녹취 공개되며 재판 새 국면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육아휴직 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남양유업 직원 A씨가 관련 행정소송 항소심에서는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소심은 인사의 원인이 육아휴직이 아닌 ‘회사의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사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뒤늦게 공개된 홍원식 회장의 육성 녹음파일이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9일 시사저널e가 확보해 분석한 여성 팀장 A씨의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매년 인재분류, 인사고가, 다면평가로 나눠 임직원 인사평가를 실시했다. 각 인사평가 결과가 일정 기준 이하인 임직원 등은 ‘특별협의대상자’로 선정됐다.
항소심은 A씨가 2012년부터 육아휴직을 쓴 2015년까지 ‘특별협의대상자’로 선정된 사실에 주목했다. 사측이 제출한 인사평가에 따르면 이 기간 A씨는 4년 연속 ‘평가저조’를 받았다.
재판부는 “사측이 특별협의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객관적인 의문이 들고, 혹시 사후에 명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면서도 “사측은 정기 인사 등에 앞서 자체 기준을 정해 특별협의대상자를 선정한 후 관련 부서장의 의견을 참고해 인사위원회에 후속조치를 검토해 권고사직이나 보직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인사제도를 운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A씨)가 특별협의대상자에 선정된 이유는 평가저조인데 원고 또한 2012년도부터 계속해 다면평가 결과가 나쁘고, 다른 부서로부터 업무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며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훨씬 이전인 2012년부터 특별협의대상자에 선정되었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원고를 특별협의대상자에 선정한 것이 객관적이지 않다거나 사후에 만들어 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사측은 원고가 육아휴직을 신청하기 이전인 2015년 11월9일부터 보직해임을 검토했고, 11월10일 개최된 정기 인사위원회에서 원고의 보직해임 여부가 검토됐다”며 “11월21일 개최된 회의에서 원고를 광고팀장에서 보직해임하고 다른 사람을 광고팀장에 임명하기로 했는데 이는 모두 원고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11월24일 이전이어서 원고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광고팀장에서 보직해임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사건 인사발령은 원고의 육아휴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참가인의 업무상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항소심은 또 A씨가 인사발령으로 생활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인사발령 이후에도 종전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인사발령 이후 광고팀에서 팀원으로 근무하면서 수행한 업무가 광고팀의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원고가 근무한 장소는 인사발령 전과 동일한 건물인 점에 비춰볼 때 이사건 인사발령으로 인해 원고에게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생활상의 불이익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항소심은 “사측이 A씨를 보직해임하기 전인 12월21일 면담을 진행했고, 육아휴직 후인 2017년 1월3일 원고와 광고팀장 교체 및 광고팀원 업무 부여와 관련해 각각 면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사측은 A씨와 신의칙상 요구되는 협의절차를 거쳤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 “못 견디게 해” 뒤늦게 공개된 홍원식 녹음파일···항소심 심리미진?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육아휴직을 원인으로 한 부당인사는 없었다”는 취지의 사측의 해명과 일치한다. 그러나 A씨에게 강한 압박을 넣으라는 취지의 홍 회장의 육성파일이 뒤늦게 공개돼 재판은 새 국면을 맞았다.
SBS가 공개한 녹취파일에서 홍 회장은 “빡세게 일을 시키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강한 압박을 해서 지금 못 견디게 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힘든 기색을 보인다는 직원의 말에 홍 회장은 또 “근데 그걸 활용을 하라고... 어려운 일을 해 가지고 말이야 보람도 못 느끼고 하여튼 그런 게 되게”라고 지시했다. 또 “위법은 하는 건 아니지만 좀 한계 선상을 걸으라 그 얘기야. 그런 게.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SBS는 “(홍 회장이) 법망은 피해 가라고 강조한 것이다”고 보도했다.
이 녹취록이 결정적 근거로 인정된다면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 원칙적으로 대법원은 사실관계와 증거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 법률심이지만, 항소심이 ‘경영상 판단’이라고 내세웠던 증거가 허구라고 볼 경우 심리미진을 이유로 한 파기환송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A씨의 행정재판과 별개로 홍 회장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과 형법상 강요죄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를 처벌하고 있다”며 “홍 회장이 다른 직원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제한 것은 협박 등을 사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으로 강요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