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열 존스홉킨스대 특훈교수 기조연설
“AI, 뇌 연구 신경과학과 함께 진화”
“뇌기능, AI 알고리즘 강화학습 유사”
“뇌 판독·통제 현실화되면 사회발전”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뇌 신경세포 활동을 재기 시작하면 감각기능과 운동, 인간의 기억, 의사결정에 관한 신호를 모두 뽑아낼 수 있다.”
이대열 존스홉킨스대 특훈교수는 9일 시사저널이코노미 주최로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제7회 인공지능 국제 포럼에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AI)에 대해 전통적인 공학과 차이가 있다고 봤다. 전통적 공학의 목적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해주는 데 초점이 있지만 AI는 인간이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일들을 대신해서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분야란 것이다.
사람이 하루 일을 보낼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있지만 이를 위해 쓸데없는 잡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되도록 기계에 대신하게 하고 한정된 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AI란 설명이다.
그는 “AI는 인간의 뇌를 닮을 수밖에 없으며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과 AI는 같이 진화해 왔다”며 “둘은 뗄 수 없는 관계라 뇌 연구자와 AI 개발자 간 아이디어 교류가 굉장히 많았고 두 학문 분야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지능의 발전은 산업혁명의 발전과 유사하다고 봤다. 그는 “산업혁명은 화석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꿔주는 증기기관이 등장하면서 이뤄졌다”며 “산업혁명으로 사람의 몸이 덜 힘들어졌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할 순 없었고 이로 인해 AI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을 AI가 대체하려면 증기기관으로 만들었던 첫 번째 기계적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과정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생명체가 지능을 진화시켜온 과정과 인간이 AI를 진화시켜 가는 과정은 유사점이 있다. 다만 이 교수는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비교해보면 미세회로로 구성된 시스템, 계층으로 구성된 회로 구성요소 등 비슷한 점이 많지만 이 유사점은 표면적”이라며 “더 깊게 들어가보면 큰 차이가 많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차이점의 근거로는 컴퓨터의 기본 기능 구성인 트랜지스터를 들었다. IC를 보면 수많은 트랜지스터들이 농축돼 있는데 이 트랜지스터가 하는 일은 일종의 스위치이다. 즉 전류를 흐르게 했다 안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서 신경세포들이 서로 접촉하는 시냅스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인간의 뇌를 단순화해 얘기할 때 시냅스가 마치 하나의 스위치인 것처럼 얘기한다”며 “부분적으로 옳은 면도 있지만 시냅스 하나의 기능이 트랜지스터와 같은 스위치 기능이라 보기엔 너무 복잡하고 실제 시냅스가 어떤 계산을 하는지 뇌과학자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냅스 기능에 대해 계산적으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시냅스와 트랜지스터가 얼마나 다른지에 관한 것을 아직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뇌와 컴퓨터를 직접 비교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단 설명이다.
이 교수는 AI가 새로운 알고리즘이 나올 때마다 더 강력해지는 점을 들어 뇌 기능과 AI 알고리즘이 유사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뇌가 하는 일은 사물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물 인식 후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지 의사결정 문제가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대표적 AI알고리즘이 강화학습인데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많이 모방하고 있단 것이다.
이 교수는 “인간의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하려면 인간의 욕망의 대상이 무엇인지, 즉 사람이 여러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는데 경제학자들은 이걸 효용함수라고 부른다”며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체의 행동 목적은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 자기가 살아남고 그 다음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목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AI의 목적은 (인간의 행동목적과는 달리) 인간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며 “인간이 준 목적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효용함수로 작동하는 것이 AI이기 때문에 인간의 뇌의 기능과 AI의 작동방식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아타리와 알파고 등의 사례를 들며 AI의 심층강화학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뇌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AI 기술을 넘어 AI와 신경과학이 밀접하게 교류하는 것이다. 즉 AI를 뇌를 이해하거나 뇌를 컨트롤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뇌 판독 기술이다.
이 교수는 “뇌 판독을 하려면 뇌에서 만들어내는 여러 신호들을 포착해야 하는데 신호를 얻어낼 방법엔 많은 제한이 있다”며 “수술 없이 쓸 수 있는 방법은 MRI가 있지만 공간적, 시간적 시각화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뇌 안에 들어가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재기 시작하면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기능에 관한 신호 외에 운동에 관한 신호, 또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된 여러 다른 종류의 기억과 관련된 신호, 또는 의사결정에 관한 신호를 다 뽑아낼 수 있다”며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지만 전자를 실제 뇌 안에 집어넣어 측정할 수 있는 신호를 이용하면 뇌에 관해 더 정확한 정보들을 많이 뽑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기술을 조금만 응용하면 실제 뇌에서 나온 신호 분석을 넘어 뇌의 신경세포들에 직접적으로 신호를 주입할 수 있다”며 “그렇게 하면 단순 뇌를 해독하는 게 아니라 뇌의 기능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뇌를 판독하고 통제를 동시에 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현재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지난 70년 간 뇌 연구와 AI연구는 많은 교류를 하면서 서로를 발전시켜 왔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그 다음에 인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많은 AI 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며 “이 두 분야는 미래 기술과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