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의행위 찬반 투표결과 92.47%로 가결···10일 결의대회 예정
코로나19 확산·국민여론 악화 등 부담···파업 동력 저하 ‘우려’

3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투쟁상황실에서 열린 ‘2021년 임단투승리 총력투쟁 돌입’ 기자회견 현장의 모습/사진=이기욱 기자
3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투쟁상황실에서 열린 ‘2021년 임단투승리 총력투쟁 돌입’ 기자회견 현장의 모습/사진=이기욱 기자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2021년 임금 및 단체교섭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약 5개월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협상을 진행했음에도 주요 요구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조 측은 찬반 투표를 거쳐 본격적인 쟁의행위에 돌입하기로 했으며 총파업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노조 측의 강력한 의지와는 달리 코로나19 확산, 가계대출 제한에 따른 국민여론 악화 등으로 인해 파업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5대 금융지주 상반기 순익, 전년比 45.69%↑···“금융노동자, 보상 받아야”

금융노조는 3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2021년 임단투승리 총력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과 김동수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 류제강 KB국민은행 지부 위원장, 김형선 기업은행 지부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전일(2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 투표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다. 금융노조는 지난 4월부터 약 18차례에 달하는 실무교섭과 5차례의 대표단교섭 등을 진행했음에도 임단협에 진전이 없자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위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투표율 73.26%, 찬성률 92.47%로 가결됐다.

노조는 우선 오는 10일 온·오프라인 동시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한 후 9월말 또는 10월초에 실제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총파업 결의대회는 각 사업장별 대표 조합원이 동시에 사업장 본사 앞에서 1인 집회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총파업 방식과 정확한 시기는 금융노조 대표자 회의, 중앙위원회 등 회의기구를 거쳐 확정할 방침이다.

박홍배 위원장은 “사측은 지난 1년 7개월동안 코로나19 경제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금융노동자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건을 고려해 1.8%의 낮은 임금인상률에 합의하고 쟁의행위 찬반 투표조차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역시 2, 3분기 개선된 경기전망 등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초에 발표한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준으로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공공기관 임금인상률 수준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영업점 폐쇄시 노사 합의 절차 신설 요구, 일자리 위원회 신설 요구 등 어느 한 가지에서도 수용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노사 간에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임금인상률이다. 노조 측은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낮은 인상률을 받아들였다는 점, 코로나19 금융지원 업무로 노동 강도가 강해졌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해보다 2.5%포인트 상승한 4.3%의 임금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경제성장률 전망치(3.0%)에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1.3%)를 더한 수치다.

또한 올해 금융사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도 인상률 상승의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올해 상반기 5대금융지주의 총 당기순이익은 9조372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6조4335억원) 대비 45.69%나 증가했다.

반면 사측은 다른 산업에 비해 금융권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높다는 점을 들어 0.9%의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고 있다. 노사 양측은 임금인상률 외에도 ▲영업점 폐쇄시 노조 합의 절차 신설 ▲저임금직군 임금차별 해소 ▲중식 시간 동시사용 등의 사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김재범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은 “타 산업 대비 임금이 높다는 것이 임금인상 불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며 “HMM은 최근 7.9%의 인상률로 협상을 했고 LG전자는 올해 초에 9%의 인상률로 합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노동자들은 지난 1년 7개월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없이 보상없이 주말에도 노력을 했다”며 “총파업을 불사하고 대대적인 활동을 펼쳐서 여러 가지 교섭 안건 반드시 쟁취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은행 대출 제한으로 국민 불만 가중···공감대 형성 쉽지 않아

금융노조의 강경 투쟁 의지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조 측이 주장하는 요구사항들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여러 악재들 때문에 총파업 등의 동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1709명으로 59일째 네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방역당국은 서울·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비수도권 3단계를 내달 3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총파업을 위한 집회 신고 등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노조 측은 집회 없이 재택 파업을 실시하는 방안 등도 고려 중이지만 상대적으로 참여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위원장은 “한 자리 모여서 파업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고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며 “하지만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사측이 계속해서 불성실하게 교섭에 임한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급증하고 있는 은행권에 대한 비판 여론 역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에 따라 최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 등을 잇따라 제한하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금융당국과 은행들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가계대출 규제와 관련해 정부부처 등과 논의·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로 쟁의행위가 통과된 것은 맞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지 여부”라며 “금융사의 이익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재의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새롭게 사용자 측 대표가 바뀌었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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