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도 상품 출시 부담 키워
인터넷은행이 먼저 흥행 성공하면 낭패···'사면초가'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100%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가장 먼저 출시한 시중은행이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다. 공 들여 상품을 출시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점은 비대면 주담대 출시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게다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시중은행과 달리 흥행에 성공하면 가계대출 경쟁의 판이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첫주자, 100% 비대면 주담대 실적 수십건에 그쳐···시중은행, 당국 가계대출 규제로 상품 출시 미루나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지난 7월 초 출시한 완전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 실적은 지난달 말까지 영업건 신청 건수에 비해 적었다. 전체 주담대가 올해 들어서도 크게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저조한 실적이라는 평가다. 우리은행의 비대면 주담대 상품은 주택 종류의 구분 없이 대출 전 과정이 비대면으로 시행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직 상품 출시 초기라 실적이 적은 것 같다"라며 "시간이 더 지나고 상품에 대한 편의성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실적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우려하던 부분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반응이다. 고객 입장에서 주담대처럼 금액이 큰 대출을 비대면으로 거래하는 것은 심리적 불안감이 생각보다 클 것이란 전망이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다.
심리적 불안감은 비대면 거래에 상대적으로 친숙한 30대에서도 높은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2년 간 주담대를 가장 많이 받아간 연령대는 30대다. 이들은 대부분 첫 내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다. 주택 매매 경험이 없다보니 억 단위가 넘어가는 금액을 비대면으로 대출 받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주담대는 금액이 크다보니 제도적, 기술적 여건이 다 갖춰져도 고객들이 불안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라며 “이러한 심리적인 요인이 약해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나머지 시중은행들의 비대면 주담대 사업은 ‘비상등’이 켜졌다. 나머지 은행도 준비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올해 비대면 주담대 상품을 내놓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우리은행이 스타트를 끊은 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일제히 주담대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내년까지 비대면 주담대 비중을 최대 30%까지 끌어올릴 계획도 내놨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한 점은 큰 부담이다. 가계대출 규모 자체를 증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대면 주담대 상품을 내놓으면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의 내정 이후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더욱 조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아예 주담대 대출을 중단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신용대출 한도를 고객 연봉 수준으로 낮추는 등 강도 높은 가계대출 관리에 돌입했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상품 출시 일정을 미루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가계대출 총량을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하는 상황에서 비대면 주담대 상품을 출시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면 당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비대면 주담대가 은행 디지털화에 있어 핵심 상품인 만큼 흥행 성공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비는 피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 준비는 계획대로 진행되겠지만 출시는 여건에 따라 미룰 수 있다"라며 "출시를 미룬다면 결국 당국의 규제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비대면 주담대 상품 출시 천명···먼저 흥행하면 가계대출 주도권 넘어갈수도
시중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흥행 실패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뱅크의 공습이 더욱 신경쓰이게 됐다. 카카오뱅크가 주담대를 출시해 인기몰이에 성공하면 시중은행은 가계대출 전체에서 주도권을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전 과정 비대면 주담대 서비스를 연내 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비대면 대출 상품은 인터넷은행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비대면 주담대도 대형은행을 제치고 케이뱅크가 가능성을 보여줬다. 케이뱅크는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아파트담보대출을 출시했다. 비록 담보 대상이 아파트로 한정되고 대환대출(대출 갈아타기)만 가능한 상품이었지만 크게 흥행했다. 이후 시중은행들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았다. 카뱅이 플랫폼 경쟁력의 우위로 100% 주담대 상품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카카오뱅크가 전산오류 논란을 딛고 전·월세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는 점도 비대면 주담대 흥행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카카오뱅크의 상반기 전·월세 대출 잔액은 6조7000억원으로 작년 말과 비교해 약 50% 급증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비대면 주담대 상품은 계획대로 출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