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정보 및 금리 조건 한 곳에서 비교 불가···향후 참여 가능성도 낮아
금융당국 ‘빅테크 봐주기’에 은행권 불만 가중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금융사들의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도입 추진하고 있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반쪽 짜리’ 플랫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의 애플리케이션에서 대출 정보를 조회하고 대환 대출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었으나 시중은행들의 자체 플랫폼 구축 결정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플랫폼이 두 개로 나눠짐에 따라 한 곳에서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은 사라지게 됐고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별도 플랫폼 구축에 나선 은행들에 대한 비판도 다수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은 금융사와 빅테크 업체간의 역차별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서비스 범위 중금리로 제한” 요구에 금융당국 ‘난색’···별도 플랫폼 출시 불가피
25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10월 출시될 예정인 금융당국의 ‘대환대출 플랫폼’에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종 불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4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지방은행 등과 간담회를 가지고 대환대출 플랫폼에 대한 의견을 조율하고자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대환 대출의 범위를 ‘중금리 대출’로 제한할 것을 요구했으나 금융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1금융권의 특성상 중금리 대출만 취급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시중은행들의 중금리 대출 규모는 2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대환대출 플랫폼은 올해 초 금융위가 ‘금융산업국 업무 계획’을 통해 발표한 올해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고객이 보유한 기존 대출 정보와 전환 가능한 다른 금융사의 모든 대출 상품의 금리 정보를 토스, 카카오페이 등 앱에서 제공함으로써 금융 소비자들이 보다 간편하게 유리한 조건의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사업 계획을 발표할 당시 대출을 제공하는 은행들 역시 대출모집인 수수료 등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플랫폼에 참여할 것으로 판단했다. 현재 은행이 대출모집인들에게 지급하고 있는 수수료는 3~4% 수준으로 1%대로 예상되는 플랫폼 수수료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추가로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도 대환대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무사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기대와는 달리 주요 시중은행들은 빅테크 앱을 바탕으로 하는 플랫폼 구축에 강하게 반발했고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공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구조 상으로는 은행들의 대출 영업이 빅테크 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은행권 ‘밥 그릇 챙기기’ 비판에도 입장 고수···“빅테크 특혜 더 이상 안돼”
금융당국은 은행 업무시간에 한해서만 플랫폼을 운영하는 등 은행의 요구조건들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은행들의 참여를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상반기 말 기준 총 가계대출 잔액이 689조원에 달하는 5대 시중은행의 대출 조회와 취급이 불가능해지면 금융소비자 편익 증진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현재 양 플랫폼 간의 경쟁을 촉진시킴으로써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면 은행들이 당연히 참여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참여를 한다고는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대출을 장악하고 있는 시중은행이 빠진 상태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 곳에서 모든 정보를 비교할 수 있는 것과 두 곳에서 비교를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향후에도 시중은행들이 빅테크 위주의 대환대출 플랫폼에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빅테크 기업에 대한 경계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시중은행들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여러 차례 간담회를 통해 은행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최종적으로 불참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밥 그릇 지키기’를 위해 소비자의 편익을 등한시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은행권 역시 이미 이러한 비판 여론을 인지하고 있지만 빅테크와의 역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자체 플랫폼 구축은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손해가 발생하지만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빅테크 기업을 성장시켜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빅테크와의 역차별 문제로 금융당국에 쌓였던 불만이 이번 일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비용 측면에서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플랫폼에 그냥 참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라며 “반대로 말하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빅테크 기업의 이용량을 늘려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이상 빅테크, 핀테크 기업들을 키워주면 나중에는 이들 기업을 통하지 않고는 대출 영업이 안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산업 혁신을 이유로 빅테크 기업들에게 많은 특혜를 줬다”며 “대환대출을 빅테크 기업의 앱을 통해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영업의 기회를 거저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역차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정책에 호응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