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먹거리 중 바이오에 특히 힘 실려··· 배터리 육성의지 의심 눈초리도
업계 일각선 ‘전고체 시대 준비’ 해석···“화재 등 리스크 겪은 LG 보면서 반면교사 했을수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출소 11일 만에 단행된 삼성의 3년 240조원 투자계획은 반도체·바이오가 핵심이다. 핵심 미래먹거리 중 하나로 평가돼 온 배터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포스트 반도체’라 평가돼 온 사업이기에 소외된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25일 관련업계와 삼성그룹 안팎의 전언을 종합하면 해석은 크게 둘로 압축된다. 우선 삼성 수뇌부가 배터리사업 수익성에 대해 주력사업과 비교해 인식을 달리한다는 주장이다. 막대한 부가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 배터리사업을 놓고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은 생각보다 저조한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이와 상반되는 긍정적 해석도있다. ‘완성차 패러다임 변화’를 넘어 ‘모빌리티 진화’로 대표되는 전기차·배터리 시장 성숙도가 낮아 경쟁사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당장의 양산보단 기술개발에 무게를 뒀을 것이란 해석이다. 반도체·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중위권을 유지하다 1위를 달성하고 초격차를 일궜던 것처럼 배터리 사업에서도 숨고르기에 돌입한 게 아니냔 분석이다.

◆ 삼성 “포스트 반도체는 바이오”···투자계획에 삼성SDI 美투자 내용은 없어

이번 투자계획은 2018년 발표·실행한 ‘3년 180조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총 투자금액 240조원 중 180조원은 국내에 집중된다. 4만명을 직고용하고 투자를 통한 고용유발효과가 56만명에 달한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CDMO·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제2 반도체 신화’를 달성하고 AI·로봇 등을 육성해 4차 산업혁명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게 이번 발표의 핵심이다. 배터리와 관련해서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차세대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할 계획”이라 언급했다. 이 부회장 출소 전부터 가석방이 성사되면 삼성SDI의 미국투자 계획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뤘던 게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짤막한 언급조차 없었던 것을 두고 부정적 해석이 고개를 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포스트 반도체’로 배터리가 아닌 바이오를 지목했다는 데 주목했다. 과거 삼성은 인공지능(AI)·차세대통신·바이오·전장 등을 ‘4대 미래사업’으로 점찍은 바 있다. 이번 투자계획을 통해 삼성은 4대 미래사업 중 바이오에 가장 무게를 싣고 있음을 내비쳤다. 바이오를 제외한 세 분야 중에서도 배터리가 포함된 전장분야 관련 언급은 가장 적었다. 배터리사업에 대한 삼성의 기대치가 낮다는 해석이 대두된 배경이다.

사실 해당 해석은 재계 및 배터리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내용이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빅3’에 삼성SDI가 포함되지만 경쟁사들에 비해 유독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막대한 투자를 통해 유럽은 물론이고 중국·북미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삼성의 투자는 유럽에 집중됐으며 이마저도 경쟁사들에 비해 괄목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세계 3대 전기차·배터리 시장 중 내재화를 추진 중인 유럽과 K배터리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중국에 비해 확실한 실익이 담보된다는 미국투자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LG와 SK가 각각 GM·포드와 합작사(JV)를 설립하며 북미 양대 완성차 브랜드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독자적으로 대형 배터리셀 공장 투자계획을 수립·이행하는 단계지만, 삼성은 북미진출의 방향성만 수립한 채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삼성SDI 본사. /사진=삼성SDI
삼성SDI 본사. /사진=삼성SDI

행보의 차이는 점유율에서 드러났다. 글로벌 배터리시장은 LG에너지솔루션·CATL이 양강체제를 이루고 있다. 한 때 정상급 점유율을 유지했으나 추월을 허용해 앞선 두 회사와 ‘빅3’로 분류됐던 일본의 파나소닉이 중위권 업체들과 일정수준의 격차를 유지하며 3위에 랭크됐다. 4~6위에는 중국의 BYD와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업계는 하반기 SK이노베이션의 삼성SDI 점유율 역전이 유력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일각에서는 “수주사업이고 완성차업계의 주도권이 절대적인 시장에서 배터리가 기대만큼의 실익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삼성이 배터리에 힘을 싣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3년 240조원 투자계획에서 배터리가 소외되자 해당 평가가 부각됐다. 한 재계 관계자도 “그룹차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은 사업의지와 결단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면서 “이번 삼성의 투자는 이 부회장 복귀 직후 이뤄졌기에 의미가 크다”고 첨언했다.

◆ “전고체 전환시점 투자 본격화···확고한 1등 노리기 위해 LG 반면교사” 해석도

즉각적인 대규모 투자대신 이른바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비록 짤막했지만 삼성이 “차세대 기술 리더십을 강화해 시장 주도권을 강화할 계획”이라 언급한 대목을 통해 현행 리튬이온 배터리시장이 아닌 전고체 배터리 양산 이후의 시점에 본격적인 성장을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다.

현행 배터리시장은 리튬이온 중심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음극·분리막·전해질 등으로 구성된다. 양·음극 사이에 전해질이 있으며 이들이 섞이지 않게 분리막이 자리한다. 양극사이를 리튬이온이 이동하며 전기를 발생시킨다. 분리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외부 충격에 의해 파손될 경우 양·음극이 충돌하고 화재위험이 높아진다.

최근 전기차 시장의 화두는 단연 화재다. 내연기관을 대신해 원가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배터리가 구동의 핵심이다. 외부요인에 의한 화재가 아니라면 발화점은 배터리일 수밖에 없다. 배터리 결함뿐 아니라 차량시스템 오류에 따른 과부하에 따른 화재발생도 가능하지만 배터리가 발화점이다 보니 전기차 화재에는 어느 회사 배터리가 탑재됐는지가 가장 관심사다.

전고체는 분리막 없이 전해질이 고체로 된 배터리를 일컫는다. 고체로 된 전해질이 양·음극을 감싸고, 고체다보니 외부충격에도 강해 화재발생 위험이 현격히 낮다고 평가된다. 리튬이온 보다 화재발생이 낮은 배터리는 또 있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다. 최근 중국업체를 중심으로 이에 힘을 싣는 모양새지만 이는 화재발상 가능성을 줄이려는 움직임보다 원가절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LFP는 리튬이온 이전 단계 기술력으로 평가된다.

 

2021 인터배터리에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마련한 삼성SDI. /사진=김도현 기자
2021 인터배터리에 가장 큰 규모의 부스를 마련한 삼성SDI. /사진=김도현 기자

배터리업계에서는 차기 배터리시장에서 표준 기술로 부상할 모델이 전고체라 입을 모은다. SNE리서치는 2030년부터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한다. 양산이 가장 빠를 것으로 예측되는 곳은 일본의 토요타-파나소닉 연합이며 삼성SDI가 뒤이어 상용화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삼성SDI에 따르면 2023년 기술개발, 2025년 시제품완성, 2027년 전기차 탑재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전영현 삼성SDI 사장은 ‘배터리 초격차’를 강조했다. 초격차는 기술경쟁력을 통해 2위와의 확고한 격차를 벌여 시장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효력을 발휘한 초격차가 현재 삼성SDI 상황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1·2위를 다투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 사장의 발언과 이번 투자계획에서 배터리가 제외된 것을 두고 결국 삼성이 전고체 이후 배터리 시장을 노린다는 예상이 나오게 됐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마찬가지로 배터리·전장에 힘을 쏟는 LG로부터 반면교사를 삼으려는 행보가 아닌가 싶다”면서 “LG는 막대한 선제적 투자로 배터리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고 국내 경쟁업체들 중 가장먼저 흑자를 이뤘지만, 전기차 화재에 따른 리스크 확대와 리콜비용 분담에 따른 지출비용이 커 우려를 낳고 있는 상황이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 점유율 성장은 테슬라에 원통형 배터리를 납품하면서 본격화됐다”면서 “LG의 리스크 확대는 마찬가지로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미성숙한 배터리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리스크 상황을 맞아 LG의 대응전략이 삼성 입장에선 학습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LG·SK가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다보니 삼성SDI 투자가 소극적으로 비춰지지만, 삼성도 매년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 및 증설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면서 “전기차 판매 1위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고집하고 있어 추가 공급처로 삼성SDI가 줄곧 거론되고 있으며, 2030년 테슬라를 넘어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폭스바겐그룹이 80% 이상을 각형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밝혔는데 각형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게 삼성인 만큼 전망이 밝은 게 사실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기차 보급 확대로 배터리 시장이 부상하겠지만 반도체 수요도 높아지고 있어, 배터리가 반도체를 넘어서는 실익을 낼지는 미지수다”면서도 “그럼에도 배터리는 상당한 실익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업임엔 분명하다”고 시사했다. 이어 “삼성의 이번 발표는 향후 3년간 이뤄질 투자일 뿐이며 배터리사업은 2040년까지 지속·팽창하기 때문에, 단순히 이번 투자계획만 가지고 삼성의 배터리사업 육성의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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