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확보 등 명분이면 사면하고, 원칙 강조하려면 그냥 가석방도 말았어야”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경영활동과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놓고 취업제한 규칙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 부회장을 가석방하며 반도체 및 백신확보 관련 기대가 많았다는 점을 배경으로 설명했지만, 그렇다면 왜 적극적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면을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광복절 가석방을 받았다. 가석방 기준 조정과 관련한 특혜논란,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이어졌지만 결국 가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출소하며 “저에 대한 걱정, 기대,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열흘이 지났지만 이 부회장은 여전히 ‘정중동’이다. 반도체 생산현장 등을 찾거나 대외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역시 취업제한 조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횡령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5년 간 관련기업에 취업활동이 불가하다.
5년 전 가석방 받았던 최재원 SK부회장 역시 출소한 이후 소극적 경영활동만 이어왔다. 이 부회장의 경우 워낙 시민단체 등의 반대가 거셌던 터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반도체 생산현장은커녕 출소하고 서초사옥을 찾았다는 소식에도 시민단체 일각에서 취업제한을 어긴 것 아니냐고 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 백신을 구하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취업활동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다”며 “이재용 부회장을 내보낸 게 정말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면 사면을 했어야 하고, 법 앞에 성역 없다는 원칙을 위해서라면 그냥 뒀어야 하는데 가석방하고 역할을 요구하니 상당히 애매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태원 SK회장은 과거 사면 이후 현장경영을 하며 적극적 행보를 이어간 바 있다. 적극적인 백신 확보 등을 위해선 해외 출국이 사실상 불가피하다. 가석방 상태에선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기 때문인데 현재처럼 취업제한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 과연 허가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 출소가 백신 확보 및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정부도 공식적으로 밝혔던 만큼, 가석방 후 법무부 해석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한 차례 법무부가 해석을 내놓은 바 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은 활동과 관련한 취지가 있었던 만큼, 실질적 효과를 보기 위해서라도 법무부의 교통정리가 확실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