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인사권 안 준 청와대에 정책 직언해야···‘방역과 경제’ 동시 잡을 수 없어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현 문재인 정부는 절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경질할 수 없다.” 기자가 잘 알고 있는 질병청 직원이 전화 통화에서 한 말이다. 기자도 이 주장에 300% 공감한다. 현 정부의 빈약한 인사 풀에서 정 청장만한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정 청장은 현 정부가 발탁한 스타관료다. 고위공무원 나급(구 2급, 국장급)에서 근무하다 현 정부 출범 후 고위공무원 가급(구 1급, 실장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차관급인 질병관리본부장에 임명된 사람이 그다. 일각에서는 호남(광주광역시) 출신인 그가 지역 혜택을 입었다고 폄하하지만 기자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차관급 고위 관료에 발탁될만한 실력과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전체에 큰 불행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감염병 대응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코로나19다. 이에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이던 질본은 지난해 9월 복지부 외청인 질병청으로 승격됐다. 특히 승격의 핵심은 직원 인사권을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가져온 것으로 분석된다. 이전 질본 시절에는 본부장이 6급 이하 인사권만 있었고 직원들과 식사할 업무추진비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질병청 차장 인사는 정부 조직에 관심 있는 똑똑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됐다는 전언이다. 청장을 보좌하고 청의 조직과 인사를 관리하는 차장 자리에 청장과 다른 라인의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청장의 추천권을 수용, 큰 하자가 없으면 임명해야 할 청와대가 청장을 배제한 상태에서 차장을 인선하는 것에 대해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기자는 반대한다.
아무리 정권 말기라고 하지만 청와대가 청장을 이렇게 무시하면 청장의 령이 직원들한테 설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인사권이 공직 사회에서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민간인들도 짐작만 할 뿐이다. 과거 외부에서 일하다 부임한 전 복지부 장관은 처음에는 직원들이 본인에 왜 쩔쩔 매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적응한 후 그 원인을 인사권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 전산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청와대가 대노한 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원래 질병청 전산시스템이 취약한 것은 직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 청장은 하루 몇 시간씩 자면서 오직 방역정책만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제 정 청장은 청와대 눈치를 보거나 의식할 필요가 없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는 신규 확진자 숫자를 감안할 때 소신에 따라 강력한 방역정책을 건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동안 정 청장의 정책 건의가 매번 경제부처 논리에 부딪혀 좌절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감염병 전문가는 세종대왕이 살아 돌아와도 방역정책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소신에 따라 정책을 주장하고 본인 의사가 관철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향후 정 청장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든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코로나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평가와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수년전 메르스 사태로 징계를 받았던 정 청장이 내년 떳떳하게 조사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소신에 따른 행정과 정책이 필요하다. 차장 인사권도 주지 않는 청와대는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국민만 보고 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