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시장 2위···국회예산정책처 "민간 금융사 발전 저해 우려"
산은 "M&A 급증 고려해야"···기업 입장에선 낮은 금리는 '이익'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최근 KDB산업은행이 인수금융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늘리자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를 문제를 삼았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무기로 신용도가 양호한 기업을 대상으로 저리의 인수 자금을 제공해 민간 금융사의 몫을 뺏고 있다는 지적이다.
산은은 예산정책처의 지적이 못내 아쉬운 분위기다. 인수 자금을 낮은 금리로 제공하는 것은 인수합병(M&A)을 진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수금융 사업을 확대하려고 하는 시중은행은 예산정책처의 지적이 반갑다는 입장이다.
◇산은, 지난해 인수금융 수수료이익 12배 급증···예산정책처 "정책금융 사용 목적 맞나"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2020회계연도 공공기관 결산'을 내고 산업은행의 인수금융 시장 점유율 상승에 대해 “민간과의 경합 가능성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어 해당 자금 공급이 정책금융의 사용 목적에 적합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은 지난 2019년 '기업금융1실' 산하에 네트워크금융단을 신설하고 인수금융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전까지는 자본시장부문 내 M&A컨설팅실에서 M&A 자문 및 금융주선 업무를 모두 수행했다. 하지만 새롭게 신설된 네트워크금융단이 인수금융을 전담하면서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다.
그 결과 산은의 2019년 시장점유율은 12위에서 3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인수금융 주선액(2조9850억원)과 대출액(1조5270억원) 모두 세 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는 코로나 사태로 주선 실적은 줄었지만, 점유율(11.1%)은 2위로 한계단 더 뛰어올랐다. 1위인 삼성증권(11.9%)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다.
예산정책처는 산업은행의 이러한 행보는 ‘IB업무를 민간 공급이 어려운 분야에 집중한다’는 방침과는 반대된다고 꼬집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015년 발표한 ‘기업은행 · 산업은행 역할 강화 방안’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IB 사업에서 민간 금융사와의 경쟁을 피하고 ‘시장실패’의 보완 기능에 중점을 두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산은의 인수금융 주선 실적이 급증하자, 시장은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산은이 인수금융을 주선한 업체는 대부분 신용등급이 A2(높지 않은 위험) 이상이었다. 민간 영역에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기업에 인수금융을 제공한 셈이다. 2011~2020년 산은의 전체 인수금융 실적(66건) 가운데 A2 이상 업체에 제공(52건)한 비중은 78.8%에 달했다.
산은이 인수금융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산금채 때문이다. 산금채는 기간산업 개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산은에서 발행하는 채권이다. 국가가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낮은 금리로 발행된다. 이에 산은은 산금채를 통해 인수금융을 위한 조달금리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산금채와 은행채(AAA) 금리는 0.06%포인트 차이가 났다.
산은은 산금채를 무기로 인수금융 시장에 2%대 금리의 대출을 제공했다. 3~4%대인 민간 금융사들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산은은 금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자이익과 수수료이익을 늘렸다. 산은이 지난해 인수금융 주선으로 거둔 수수료이익은 270억원으로 2018년 대비 12배 넘게 급증했다.
예산정책처는 “한국산업은행이 정책금융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부 상업적 활동으로 이익을 내 재정부담을 줄일 필요성은 있다”라며 “하지만 정책금융기관의 상업적 업무로의 지속적인 확장은 민간 금융 발전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산은 "민간 금융사가 제공하기 어려운 건수도 존재"···시중은행 "산은이 한 발 빼면 이익"
업계에서는 산은이 다소 억울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M&A를 시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데 있어 최우선 사항은 ‘대출금리가 얼마나 낮은가’다. 누가 자금을 제공하느냐는 별로 고려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산은도 예산정책처에 “산은의 인수금융은 민간 금융사가 제공하기 어려운 영역의 건들이 존재한다”며 “기업의 생존을 위한 자발적 사업구조 재편,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한 국내·외기업의 M&A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인수금융은 보통 금액이 크기 때문에 기업들은 대출 금리 0.1%포인트에도 민감하다”라며 “산은이 인수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예산정책처의 지적을 반기는 분위기다. 산은이 시장에서 한 발 물러선다면 시중은행이 차지할 몫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최근 인수금융을 포함한 IB사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은행은 최근 전통적인 여·수신업에 의존하면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은행업 도전을 막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IB사업은 금융의 급격한 디지털화 과정에서 기존 대형 은행의 생존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IB는 전문 인력들의 지식과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사업이기 때문에 빅테크 기업이 비대면거래로 쉽게 진출하기 어려운 분야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대형 은행은 IB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산은이 워낙 낮은 금리로 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쉽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라며 “산은이 IB사업에 소극적으로 나온다면 대형은행들의 점유율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