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양국 고위급 회담서 갈등 노출···“대화 하면서 대립 상황 이어질 것”
“코로나 사태로 美 위기감 커져···中, 우리와 반도체 협력 움직임 대비 필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미중 갈등이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시절 무역전쟁까지 치렀던 양국 관계는 바이든 시대에도 개선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나라간 험악한 관계가 길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는 가운데 미국의 압박을 받는 중국이 타개책으로 우리나라를 활용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 제기된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국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장관은 중국의 사이버해킹과 홍콩의 고도자치에 대한 약속 위반, 신장지역 인권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해 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이에 질세라 셰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미중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미국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미국이 중국을 악마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고위급 회담은 오는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 간 만남을 고려해 유화 모드로 갈 수도 있단 전망이 나왔지만 갈등만 노출하면서 교착관계에 빠진 양국 관계가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보통 국가간 관계가 완전 틀어졌을 때가 아니라면 외교 고위급 회담에서 이런 험악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며 “신정부 초기 기싸움이나 탐색 차원에서 나온 마찰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근래들어 미중간 협의나 대화에 있어 참가자들의 직급이나 빈도수가 과거에 비해 훨씬 떨어졌고 양측 입장이 완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며 “중국과 거리리를 두는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협력모드로 전환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미 중간선거가 있어 정치적으로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풀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대화는 하지만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도 정치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세 번째 임기 여부가 결정되는 내년 10월 열리는 제20차 당대회 이전까지는 본인의 입지나 인기 관리 측면에서 강경한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 국내 정세적으로 시 주석이 대미 강경 자세로 나갈 수 밖에 없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국내에서 대중정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할 상황이 아니다”며 “양국 정상이 만난다고 쉽게 개선될 상황이 아니라 G20 정상회의 이후까지 대결 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은 트럼프 정부 때부터 이어진 것인데 현재도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국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트럼프 정부 때는 처음엔 관세로 충돌하다 수출입 투자 전반으로 확대됐는데 바이든 정부에서도 공급망 재편 등 그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산업구조 변화는 세계 패권으로 이어지는 부분이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지금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미국 조야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현재 정치, 외교, 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제가 가장 약한 부분이란 지적이다. 심 교수는 “미국이 정치, 군사 부분은 우위에 있었지만 경제 측면에서는 그동안 값싼 중국 제품 수입으로 대중국 적자가 쌓이는 상황”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우위를 갖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드론,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산업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중국에 패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심 교수는 “미국은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치고 들어오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이라며 “중국은 반도체에 약점이 있지만 인공지능, 빅데이터, 드론 등에 있어선 경쟁력이 있다. 특히, 전기자동차는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아직 낮아 자체 기술개발을 통한 역량 강화는 쉽지 않은 상황이란 분석이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피해 한국, 일본, EU와의 국제협력을 도모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 위원은 “중국이 우리나라와 반도체 분야 협력을 꾀한단 것은 우리 입장에선 기회보단 위기 측면이 더 강하다”며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데 경계심을 갖고 있는데 우리 기업 기술이 중국에 유출, 이전되는 것에 대해 마땅찮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공동선언문에도 나온 수출 통제와 외국인 심사 강화 문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연 위원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환영했지 외국인 투자를 심사에서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못했다”며 “이런 부분이 미국은 우리가 동맹국 기술 보호에 있어 구멍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우리의 핵심 기술과 관련해 수출 통제, 외국인 심사 강화 등을 통해 중국 쪽으로 유출을 막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미중 모두 어느 한 쪽의 기가 꺾이기 전까지는 자신의 포지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코로나19 상황 속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미국은 약점을 많이 노출했지만 중국은 국가사회주의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여러 어려움을 일사분란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심 교수는 “미국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사회와 중국으로 대표되는 국가사회주의의 새로운 신냉전이란 프레임이 적어도 코로나19가 극복되기 전에는 양쪽 다 현재 스탠스를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