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세 이어오다 OPEC+ 증산 발표 후 혼조세···전문가 “70달러선 유지” 우세
“델타변이, 성장 없는 물가 상승 가능성”···“정부, 수급 안정 확보 관심 가져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지난해 중반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던 국제유가가 최근 급등락을 반복하며 혼조세를 보이자 하반기 가격 흐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100달러 돌파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 가운데 유가 상승으로 부담이 큰 업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배럴당 20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던 국제 유가는 이후 오름세를 지속하다 이달들어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유(WTI)는 13일 75달러선을 찍었으나 이후 내림세로 전환해 19일엔 66.35달러까지 밀렸다. 하지만 다시 급등세로 전환해 23일 현재 72.07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두바이유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단 최근 급등락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비 OPEC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가 다음달부터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감산을 완화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OPEC+ 발표 직후 유가는 60달러 중반까지 밀렸지만 다시 오름세를 이어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향후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브렌트유가 지속 상승해 내년 여름쯤 배럴당 10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올해 하반기 국제 유가가 완만한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단 현재 유가는 드라이빙 시즌 영향이 강한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드라이빙 시즌이다. OPEC+가 점진적 증산을 발표했지만 수급밸런스를 맞추기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유가가 유지될 수 있지만 연말로 갈수록 점진적으로 우하향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럴당 65달러~75달러 수준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다음달 이란 라이시 정부 출범 이후 변동성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 연구원은 “OPEC+ 방향성이 점진적 증산으로 확인됐고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드라이빙 시즌이 8월 말로 끈타기 때문에 유가는 점진적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며 “변수는 코로나 상황이 델타 변이로 예측이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선임 연구원은 “하반기 중 OPEC+가 원유 생산량을 점차 늘릴 것이고, 과도한 에너지 가격 상승을 제어하고자 하는 국제적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국제유가는 단기 상승 이후 박스권 내에서 등락할 개연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장은 “하반기 평균 유가는 70달러 조금 밑도는 수준, 올해 전체적으로는 66~67달러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며 “최근 유가 100달러설 같은 위기설도 나오는데 단기적으로 유가가 뛸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70달러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반기 원유 수요가 예상보다 빠지고 공급도 수요 상황에 따라 조정될 것 같다는 분석이다. OPEC+가 다음달 시장 상황을 보고 그 다음달 생산량을 결정하겠다는 사인을 계속 보내고 있어 수급 상황이 심하게 어긋날 가능성이 낮아 급등락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란 설명이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유가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경제 내 불확실성 요인이 없다면 크게 오를 일이 없겠지만 델타 변이가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점이 변수”라며 “수급 불균형, 수요 부분도 불확실성이 크고 탄소 중립이 논의되는 시점이라 화석연료 정책이 나오면 가격이 미리 반응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있어 단기적으로는 어느정도 인플레이션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유가 수요가 감소할 수 있지만 공급이 불확실해지는 상황도 있을 수 있어 상하방 요인을 딱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유가가 흔들리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KDI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유가가 70달러선을 유지할 경우 연간 경제 성장률은 0.7%p, 물가상승률은 0.8%p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 위원은 “당시 고유가 시나리오로 밝혔던 70달서 선으로 가는 분위기”며 “물가 상승이 수요 회복으로 생기는 것이면 성장률에도 긍정적이지만 지금 델타 변이가 퍼지면서 물가 상승이 그대로 가더라도 경제 회복은 조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돌발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4% 성장이 무난한 것인데 지금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다시 퍼지는 상황이라 경제 회복에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 델타변이 확산이 가속화돼 경기 부진이 발생하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추가적으로 급등하는 경우, 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상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 지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천 위원은 “장기적으로는 국제유가 충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축소하고, 기후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원유 및 석유제품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오르면 석유 소비가 많은 항공, 화학, 석유화학 등 원료비가 많이 올라가는 분야의 타격이 크고 유가가 지나치게 내리면 정유, 조선, 중공업 등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분야는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상황 악화시 부정적 영향도 큰 상황이다.
유가가 흔들리면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주기에 대책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유가 관련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우리나라는 가격도 자율화 돼 있고 다른 에너지 시장과 다르게 전부 민간 부분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크게 많지는 않다”며 “수급안정성 확보와 가격 급등락 방지 등 2가지 방향의 대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면 가격 측면에서 정부가 크게 할 일은 없지만 수급안정성 측면에서는 위기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나 중동지역이 계속 불안한 모습인데 국지적 수급 불균형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위기시 도입선 다변화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현재 유가 수준이 고유가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 팀장은 “과거 유가가 100달러가 넘었던 시절도 있었고 유가가 너무 낮으면 경제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적정한 유가 수준을 판단하긴 어렵지만 50달러~70달러 수준이란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가 수준이 이 수준보다 아주 높은 상황이 아니라 우리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