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로 주춤한 재건축·재개발 대안으로 떠올라
“규제 덜하고 사업 속도 빠른 편···일감 확보 차원”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는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형 건설사들이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정부 규제로 주춤한 재개발·재건축 사업 대신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건설사의 영역으로 불리던 가로주택정비사업 시장에 대형사들까지 합세하면서 치열한 수주 경쟁이 예상된다.
2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형 건설사들의 참여가 늘고 있는 추세다. DL이앤씨는 올해 4월 인천 미추홀구 ‘용현3구역’을 통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용현3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지상 최고 38층, 3개 동, 348가구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공사비는 856억원으로 책정됐다. 자회사인 DL건설도 지난 5월 서울 양천구 목동 651-1번지 일원 가로주택정비사업(1121억원)을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올해 2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 477 일원 가로주택 정비사업을 따냈다. 200가구 규모로 공사비는 503억원이다. GS건설은 자회사 자이에스앤디를 통해 수송동1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서초구 낙원청광연립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우건설 역시 자회사인 대우에스티가 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서울시가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2012년 도입한 제도로 ‘미니 재건축’으로도 불린다. 기존 가로구역(도로로 둘러싸인 구역)을 유지하면서 노후 주거지를 2만㎡ 이내 소규모로 정비하는 사업이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구성 등의 절차가 생략돼 사업기간 단축이 가능하다. 일반 재건축 사업이 평균 9.7년 소요되는 반면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약 3~4년 가량 소요된다.
그동안 대형사들은 낮은 사업성과 수익성을 문제로 참여를 꺼렸다. 하지만 강화된 안전진단과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로 기존 재건축·재개발이 주춤하면서 사업 속도가 빠른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통해 일감 확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관련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는 점도 대형사들이 관심을 나타내는 배경이다. 서울시는 2018년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대한 층수 제한을 최고 15층으로 높였고, 올해는 층수제한이 상향되지 않았던 7층 이하 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대해서도 최고 층수를 7층에서 10층 이내로 완화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하는 곳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내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102곳(5월 기준)이다. 지난해 2분기(1~6월) 63곳에 비하면 1년 새 40곳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 중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가 39곳으로 전체의 38.2%를 차지한다. 강동구가 12곳으로 가장 많고 서초구(10곳), 송파구(9곳), 강남구(8곳) 순으로 나타났다. 비강남권에선 강서구(10곳), 성북구(9곳), 강북구(6곳) 등의 비중이 높았다. 사업 절차 기준으로 보면 102곳 중 57곳이 조합설립인가 단계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의 각종 규제로 재개발·재건축 사업 속도가 더뎌 실적 확보가 쉽지 않다”며 “규제가 덜하고, 속도가 빠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건설사들만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앞으로는 대형사들 간의 사업 수주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