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무더위로 주민 생활 어려움 가중···“집 안에 있는 게 스트레스”
무더위에 대부분 문 열고 생활, 방역 무방비···“주거 환경 개선 필요” 

2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건물 내부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2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건물 내부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이 날씨에 한 번 살아봐.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거지.” 

2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 쪽방촌 무더위 쉼터. 찜통 더위를 식히고자 주민들이 천막 안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기상 가장 덥다는 대서답게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이곳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A씨(86)는 “여기서 자식들 다 키웠다. 오래 살았지만 다 불편하다”며 “원래 옥상에 살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다리가 아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동네 주변 청소하면서 받는 27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한다”며 “이걸로 방세 내고 생활비 쓰면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옆 자리에 있던 한 노인은 “이런 날엔 집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라며 “코로나에다 날도 더우니까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는 가운데 무더위까지 기세를 올리면서 취약계층의 여름나기는 더 고달파지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무더위 쉼터를 개방하는 등 보호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본질적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여름은 일반적으로 한반도를 뒤덮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함께 고온건조한 서쪽의 티베트 고기압까지 밀려오면서 지표면 열기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른바 ‘열돔현상’으로 무더위가 더 극성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찜통 더위까지 겹치면서 취약 계층의 여름나기는 더 고달파진 상황이다.

남대문 쪽방촌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남대문 쪽방촌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기자가 이날 오후 찾은 남대문 쪽방촌 야외 휴게 쉼터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천막에 간이 의자를 놓은 수준이었지만 주민들은 땡볕을 피할 수 있어 답답한 집을 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긴 요긴하다는 반응이다. 남대문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하루에 70명 정도 쉼터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며 “종종 날이 많이 덥다는 얘기는 있지만 잠시 쉬었다 가는 정도라 크게 불만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한 쪽방촌 건물 내부에 들어가 봤다. 땡볕 보단 덥지 않았지만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날씨가 덥다보니 방 안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방문을 열어놓고 지내고 있어 개인 사생활 보호는 힘들어 보였다. 대부분 가벼운 옷차림이고 남성의 경우 속옷만 입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쪽방 안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는 것도 불가능해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쪽방 건물 전체로 퍼지기 쉬운 구조였다. 위생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쪽방 복도 입구에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 비슷한 퀘퀘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쪽방 내부도 워낙 좁다보니 살림살이 정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곳을 찾아 운영 현황과 폭염 저감대책을 점검했다. 취재진과 주민들이 북적이는 상황을 불쾌해하는 일부 주민이 소주병을 깨뜨리며 고성을 지르거나 상의를 벗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소란이 있기도 했지만 오 시장을 만난 주민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쪽방촌 생활과 애로사항을 설명했다. 오 시장은 소화전 용수 살포에도 직접 참여해 거리의 열기를 식혔다. 

현재 서울시는 여름철 무더위 대책으로 420개 동주민센터 등 관공서를 무더위쉼터로 개방하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옥탑방 등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안전숙소 37개소도 운영하고 있다. 남대문, 서울역 등 주요 5대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13개의 무더위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무더위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주거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쉼터에 앉아있던 한 주민은 “시장이 오면 '나라에서 집을 지어준 것은 고마운데 좀 더 넓게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현재 남대문 쪽방촌에 남은 사람이 230세대 정도인데 임대주택은 180세대를 지어 나머지 50세대는 갈 곳이 없다”며 “원치 않는 퇴거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세대수 만큼 임대주택을 추가로 짓고 주민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2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남대문 쪽방촌에서 살수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22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남대문 쪽방촌에서 살수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최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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