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임차인 다수 혜택” 강조
“정부 현실 외면하고 안일한 인식 보여줘”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부동산시장 4대 교란행위 중 하나이면서 그간 포착해내지 못했던 허위 거래신고 등을 이용해 시세를 조종하는 소위 ‘실거래가 띄우기’ 사례들을 최초로 적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제26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 같은 ‘부동산거래 허위신고 기획조사 결과’를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계약 해제 신고가 의무화된 작년 2월부터 12월 말까지 약 10개월간 71만여 건의 아파트 거래 등기부 자료를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 실거래가 띄우기 혐의가 짙은 부동산 거래는 12건이었다. 정부가 그동안 집값 상승의 주범이 실거래가 띄우기라고 강조한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최초 적발’이라는 성과에 의미를 둔 듯하다.
사실 이 내용은 국토부에서 다음 날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홍 부총리가 엠바고(보도 시점 유예)를 깨고 먼저 발표한 것이다. 발표를 서두른 이유는 최근 1년 동안 시행된 부동산 정책 중 유일한 성과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른 정책 효과가 미미한 만큼 눈길을 끌 키워드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이날 함께 발표한 임대차 3법 점검결과에 대해선 혹평이 쏟아졌다. 홍 부총리는 모두발언의 상당 부분을 임대차 3법 관련 내용으로 할애했다. 특히 “임대차 3법으로 임차인 다수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대차 3법 시행 1년 만에 서울 아파트 10채 중 8채가 기존 계약을 갱신하는 등 세입자 주거가 안정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갱신률은 임대차3법 시행 전 57.2%에서 시행 이후 77.7%로 증가했다. 갱신 계약 중 76.5%가 인상률 5% 이하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점도 임대차3법 효과의 근거로 들었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홍 부총리가 현실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언급된 임대차법 효과는 계약 갱신 대상인 기존 세입자에 국한됐을 뿐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나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신혼부부, 청년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임대차3법 시행 이후 새로 전셋집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 실정이다. 기존 임차인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서 전세 물건이 크게 줄어서다. 집주인들이 계약 연장을 고려해 4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려 받다 보니 전셋값도 크게 뛰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07주 연속 상승 중이다.
전월세 시장 왜곡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같은 단지 내에서도 신규 계약과 계양 갱신 매물은 1억~2억원 차이가 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계약 갱신 과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처럼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세입자의 주거안정이 훼손되고 있다는 사례들이 차고 넘치지만 홍 부총리는 이날 낯 뜨거운 자화자찬만 늘어놨다. 보고 싶은 것만 드려다 본 결과다. 정부가 현실을 외면하는 사이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임대차 3법을 밀어붙인 정부 입장에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과했다.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식의 발표는 의미가 없다. 분명해진 정책적 부작용과 다가올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보완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