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상승 압력 확대 분석···2분기 소비자물가지수 9년 만 최대 상승률 
“일상 생활 전반서 물가 상승 체감” 목소리···전문가 “유동성 회수 바람직”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 / 사진=최성근 기자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 / 사진=최성근 기자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라면값이 다 오른다는 소문이 있어서 미리 사뒀어요.”

서울 강동구에 사는 60대 주부 A씨는 최근 라면을 다량 구매했다. 최근 한 라면업체가 요금 인상을 단행하면서 다른 라면업체도 가격 인상이 잇따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A씨는 “물가가 오른다는 얘기가 나오면 살림살이가 팍팍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며 “집안 수입이야 뻔하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지출을 줄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분석이 잇따르면서 국민들의 불안 심리 또한 커지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정부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선을 그었지만 최근엔 가능성을 열어놓은 가운데 물가 상승이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유동성 회수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해상 운임 급등 등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대 인플레이션도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대비 2.4% 상승했다. 2분기(4~6월) 기준으로는 2.5% 뛰며 2012년 1분기 (3.0%)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과일(22.2%)을 비롯한 신선식품이 전년대비 10.3% 올랐고 식품(4.3%) 등 생활물가지수도 3.0% 올랐다. 향후 소비자물가 전망을 의미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 역시 올해 2월 2.0%에서 지난달 2.3%로 뛰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최근들어 물가 상승세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올해 초까지 농산물을 중심으로 물가 고공행진을 이끌어왔다면 최근엔 범위가 넓어지는 조짐을 보인다. 

물가 불안 기류는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기자가 이날 오전 찾은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 내 달걀 판매 코너. 한 주부가 한참 동안 달걀 메뉴를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다른 코너로 이동했다. 이후에도 매장 앞에서 메뉴를 살피는 사람은 드문드문 있었지만 선뜻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었다. 달걀 매장 점원은 “달걀시세가 많이 비싸다. 지금 30구짜리 1판이 7000~8000원 정도인데 작년엔 비싸봐야 4000~5000원 정도였다”며 “그래도 올해 초 1만원까지 했던 것에 비하면 내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매장에서 쇼핑을 하던 60대 주부는 “물가가 오르긴 많이 올랐다”며 “공산품, 생필품 등 다들 올라서 살림살이에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최근 오뚜기가 라면값 인상을 단행하면서 다른 라면업체도 가격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매장 점원은 “라면값이 오른다고 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라면이 많이 팔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불안 심리로 사재기 조짐이 있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통시장도 장바구니 물가가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과일가게 주인은 “전반적으로 과일값이 많이 올랐다”며 “특히 배가 많이 올랐는데 한 달 전보다 1000원 정도 올라 한 개에 7000원 정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 말고도 사과, 수박 등 과일이 다 올랐는데 작년에 장마가 길어 농사가 잘 안됐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비쌀 것”이라며 “가격도 비싼데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원체 나오질 않아 장사가 안된다”고 말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시장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앙시장 모습. / 사진=최성근 기자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B씨는 “점심을 먹을 때 특히 물가가 올랐다는 걸 느낀다”며 “음식점에서 사먹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편의점에서 점심 대용으로 샌드위치 등을 사먹을 때 예전에는 통신사 할인 받으면 싸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상 생활 전반에서 물가가 올랐다는 느낌을 체감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는다. 한은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최대 0.2%포인트 상승하고 그 충격이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한다. 우리나라의 전년대비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연간 –8.7%였으나 올해 들어 급격하게 반등했다. 지난 1월 -5.8%에서 지난달 14.0%로 치솟았다.

수도권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C씨는 “최근 휘발유 판매 가격은 올해 초에 비해 200원 정도 오른 1658원 정도인데 거래 고객들이 비싸다는 볼멘소리를 할 때가 있다”며 “같은 시기 서부 텍사스유가 40달러에서 70달러 수준으로 뛴 것에 비하면 정도는 덜하지만 오름 폭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불안에 대해 “상반기에는 식료품에 머물고 있었는데 최근들어 물가 압력이 확대되는 건 사실”이라며 “인플레이션 기대가 생기면 실제 물가에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불안이 확대되면 금리 조절 필요성이 생기고 금융시장 불안정도 커지게 된다”며 “문제는 4차 변이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졌기에 재정 쪽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집중 지원하고 전반적인 유동성은 거둬들이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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