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사실 흔드는 증언 연속으로 나와···“장모 최씨 관여”
기소조차 안 된 71억·38억 잔고증명서 ‘행사’ 관련 증언
檢 “4장 위조해 1장만 행사”···부실수사 논란 자초했나

“당좌수표 발행일을 변경할 때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레스토랑에서 장모 최씨와 전 동업자 안씨,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 만났습니다. 최씨가 직접 날짜를 고치고 (인감)도장을 찍었습니다. 6~7개월 동안 만난 횟수가 10여 차례 됩니다.”

2021년 7월1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와 ‘잔고증명서 위조·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전 동업자 안아무개씨의 재판을 심리하는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는 이날 예정된 증인이 아닌 사람을 직권으로 법대 앞에 세웠다. 임의로 법정에 나온 사람을 신문하는 재정증인신문이었다.

재판부는 이날 안씨를 통해 최씨에게 3억원을 빌려줬다는 임아무개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먼저 진행했다. 임씨는 최씨와 안씨가 위조한 4장의 잔고증명서 중 2번째 잔고증명서인 71억원짜리를 확인하고 금전거래를 한 인물로, 지급기한이 넘어갈 때마다 당좌수표 날짜를 변경하며 최씨 명의로 작성된 확인서를 받았다.

그런데 임씨는 해당 업무를 자신의 후배 서아무개씨가 담당했고, 서씨가 최씨를 수차례 만나 확인서를 받아왔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임씨의 증언 신빙성을 확인하고자 예정에 없던 서씨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 것이다.

서씨는 검찰과 안씨의 변호인조차 처음 이야기를 털어놨다. 자신이 2014년 9월부터 6~7개월에 걸쳐 장모 최씨를 직접 만나 당좌수표 발행일 변경과 관련된 자필 확인서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서씨는 “확인서에 날짜가 빠지면 날짜를, 금액이 빠지면 금액을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장모 최씨가 응했다”며 “확인서를 받으면 바로 임씨에게 전달했다. 10여 차례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확인서에 찍힌 인감도장이 장모 최씨의 것이고, 장모 최씨가 직접 도장을 찍었다고도 설명했다. 서씨는 장모 최씨의 이름과 도장이 찍힌 10여장의 확인서도 추가로 공개했다.

서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위조된 71억원 잔고증명서를 바탕으로 발행된 당좌수표의 날짜변경을 장모 최씨가 직접 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71억원 위조사문서행사 범행에 장모 최씨가 개입 또는 주도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이 ‘안씨 단독으로 71억 잔고증명서 행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배치된다는 점이다. 이날 임씨조차 검찰에서 한 진술을 뒤집었다. 그는 최초로 받은 잔고증명서가 71억원짜리가 아닌 38억원짜리라고 말했다. 38억 잔고증명서 ‘행사’ 범행은 장모 최씨나 안씨 두 사람 모두 기소조차 되지 않은 내용이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흔드는 법정 증언은 또 있었다. 이날 기일보다 앞선 지난 6월2일. 증인으로 출석한 또 다른 임아무개씨도 장모 최씨가 71억 잔고증명서 행사 범행에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임씨는 안씨가 제시한 최씨 명의의 수표 5장을 근거로 총 18억3500만원을 빌려준 인물로, 현재 장모 최씨와 민사소송 중이다. 그는 1심에서 패소한 상태다.

그는 “2층에 위치한 내 사무실로 안씨가 찾아왔고, 최씨는 1층 건물밖에 있었다”며 “불과 2~2.5m거리였다. 목소리도 듣고 얼굴도 식별이 됐다. 160cm가량의 키와 색안경을 썼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의 증언을 탄핵하고자 “다른 사람과 오인한 게 아니냐”고 묻는 등 장모 최씨를 두둔하는 식으로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장모 최씨의 얼굴을 스크린에 띄워 증인에게 확인까지 했다. 방청석에서는 혀를 차는 소리까지 나왔다.

증인 3명이 연속으로 거짓말을 했을까. 검찰의 공소사실이 부실했던 것일까. 기소 당시부터 잔고증명서 재판은 위태로웠다. 장모 최씨가 안씨와 공모해 350억원에 달하는 잔고증명서 4장을 위조했지만, 행사한 잔고증명서는 1장뿐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안씨는 2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중이다).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범죄는 ‘세트’로 기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검찰이 나머지 잔고증명서 행사 범행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실수사 논란은 예견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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