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부문장에 또 내부인사···시중은행은 외부인물 영입 '몰두'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 VS "외부 인사 효과 입증 안돼"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시중은행이 디지털 부문에 외부 전문가 영입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IBK기업은행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어 금융권의 관심이 모인다. 기업은행은 디지털 사업 관련 주요직에 내부 인사 등용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디지털화로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단 우려가 나온다. 반면, 외부 인사 영입이 반드시 디지털 사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최근 하반기 인사를 단행했다. 김윤기·전규백 부행장이 정년퇴임하면서 박청준·문창환 본부장이 승진했다. 기업은행은 문 부행장에게 디지털 부문장을 맡겼다. 기존 디지털 부문장을 역임하던 전병성 부행장은 6개월 만에 준법감시인 자리로 옮겼다.
기업은행의 이번 인사는 최근 은행권과는 정반대 행보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디지털 부문의 임원급 자리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기 바쁜데 기업은행은 내부 인사로 충원하고 있어서다. 기업은행 디지털 수장을 맡은 문 부행장은 주로 기업금융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전임 디지털 부문장인 전 부행장도 인사부장과 지역본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기업은행은 상무, 본부장 급에도 외부 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반면,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삼성전자 빅데이터센터장 출신인 윤진수 부행장을 영입해 테크그룹장에 임명했다. 조영서 전 신한 DS 부사장도 디지털전환(DT) 전략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신한은행도 올해 초 인공지능(AI) 사업을 총괄하는 통합AI센터(AICC) 수장으로 삼성SDS 출신 김민수 센터장을 선임했다. 작년 말에는 은행장 직속 디지털혁신단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가인 김혜주 마이데이터 유닛 상무와 김준환 데이터 유닛 상무를 영입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미래금융본부에서 개인디지털사업 섹션과 AI 빅데이터 섹션을 담당할 김소정 부행장을 외부에서 데려왔다. 우리은행도 올해 DI추진단을 신설하고 단장으로 김진현 전 삼성화재 디지털본부 부장을 새롭게 영입했다. 우리은행은 일찌감치 외부 전문가인 황원철 부행장을 영입해 디지털 사업의 최전방에 세운 바 있다. 농협은행도 지난해 디지털금융부문장에 이상래 전 삼성SDS 상무를 선임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의 디지털 인사 행보를 두고 트렌드에 뒤처지고 있는 처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도전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시중은행은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은행의 보수주의적 문화를 깨고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내부 인사로만 디지털 사업을 이어가자칫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단 지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디지털 부문에서만 이례적으로 외부인사를 적극 영입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 역량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외부 전문가 영입은 앞으로 더 이뤄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부 전문가 영입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니란 의견도 제기된다. 은행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한 만큼 리스크도 있단 설명이다. 외부 인사들이 비금융권 출신이기 때문에 금융과의 융합과 조직 문화의 융합 등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다. 임원급 외부 전문가보단 디지털 소양을 갖춘 실무급 행원들이 많이 갖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단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 이유는 다른 업권의 디지털 부문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은 만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외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소화할 수 있는 실무급 직원들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따라 영입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어떤 방식을 택하든 결과가 말할 것이란 것이 은행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기업은행은 현재 디지털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19년 금융권 유일 중소기업 플랫폼 ‘BOX’를 출시해 금융감독원 스마트금융 대상을 수상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에 디지털부문 지휘봉을 잡은 문 부행장은 디지털 업무와 관련있는 미래기획실장을 역임한 적이 있는 등 다방면으로 경력이 있는 만큼 사업을 잘 이끌 것으로 본다”라며 “외부 인사 영입도 항상 열려있는 상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