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조원에서 200조원 되는데 4년···200조원 돌파 8년 지났지만 236조원에 머물러
기존 점유율로 돈 버는 형국···주가도 약세
회사 차원 과감한 결단 이뤄져야 할 시점···총수 이재용 부회장은 수년 간 법적 다툼 중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가 사실상 멈춰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의 경쟁력과 점유율로 돈은 벌고 있지만 한 국면 더 성장하기 위한 변수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약세인 주가가 이를 말해준다. 삼성전자 위상의 변화는 국가경쟁력으로도 직결되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 매출 200조원을 달성했다. 당시 세간에선 삼성전자가 매출 200조원의 시대를 열었다며 흥분했다. 매출 100조원을 돌파(2008년)한 지 4년 만에 매출 200조원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은 236조원이다. 8년 동안 36조원 늘었다. 성장률이 더딘 회사라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IT(정보기술)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매출이 중요하다. 네이버, 카카오 등이 국내 굴지의 IT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멈춰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시장도 엔비디아 등 맞춤형 업체가 뜨며 변화 조짐
삼성전자의 성장이 사실상 멈추다시피 한 이유는 사실상 메모리에만 의존하는 사업구조에 기인한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와 비메모리 부문으로 나뉜다. 서버 등에서 디지털 저장소 역할을 하는 D램, 낸드플래시가 메모리에 해당하는데 삼성전자는 이 부문 세계 1위다. D램 가격은 일정한 사이클이 있어 가격이 오르내리고, 각 메모리 업계 선두주자들은 이 사이클에 따라 수익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영업이익 12조5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중 8조원 가까이가 반도체 덕이고, D램 가격 상승 때문으로 분석된다.
메모리 부문 점유율은 사실상 큰 변동이 없고 이 때문에 실적은 특별 이벤트가 없는 한 더 좋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다. 다만 코로나19로 PC소비량이 늘어나거나 데이터센터가 생겨나는 변수들이 있어 호재가 되기도 한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현재 구도에서 이익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한 노력보단 게임을 뒤바꿀만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존 메모리 시장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판이 바뀌게 되면 기존 시장 지배자들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금까지의 반도체 소비 방식은 삼성전자, 인텔과 같은 곳이 범용목적(General purpose)으로 양질의 칩을 생산하면 필요한 곳이 사가는 흐름이었는데, 점차 업체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이를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모두 직접할 필요 없고 파운드리 집중해야”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삼성전자와 같은 General purpose 생산 업체보다 AMD, 엔비디아 같은 주문형 업체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애플의 M1칩이 대표적 예”라고 분석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갈 길은 꼭 시스템 반도체와 관련해 모든 것을 직접 하기보다 역시 파운드리 역량 강화로 주문형 칩 생산을 받아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업체 등이 차량용 각자 자사 제품에 맞는 반도체를 설계하거나 요청하면 뛰어난 기술로 이를 만들어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미국업체들의 수요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반도체 설계 업체의 60%이상은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부 역할이 중요한 까닭이다.
삼성전자로선 메모리로 돈 버는 것을 넘어 전향적인 변화와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법적 리스크에 묶여있는 상황이 재조명 받는다. 현 정권 내내 감옥을 오가며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을 계속 이어오지 못했다.
일각에선 ‘총수가 없다고 투자를 못하냐’라고 하지만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총수가 있어야 주요 투자를 하는데 있어 유리하다는 것은 재계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하고 전략을 재편하는 것이나 현대차가 미래차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던 데엔 구광모 LG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업계 등 해외에서도 이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재계 인사는 “총수 없으면 투자 못하느냐는 이야기는 기업과 산업의 기본적인 생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