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의견서에 재판부 “1심과 유사···사실과 의견 분리 안 돼” 지적
검찰, 제출한다던 환경부 실험보고서도 주제·현황 파악 못 해
재판부, 이례적으로 제출기한까지 지정···“또 어기면 접수 안 받아”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임직원 13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임직원 13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이 기소된 가습기살균제 사건 공판준비기일이 검찰 측의 부실한 서류제출로 공전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서류가 새로운 증거로 보기 어렵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실험결과가 나올 때 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기한까지 특정해 보완을 요청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윤승은·김대현·하태한 부장판사)는 13일 오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대한 항소심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준비기일에 임박해 의견서 등 서류를 제출해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됐고, 그 내용 또한 증거로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난 기일 (검찰은) 7월 이후로 기일을 잡으면 공소사실을 입증을 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할 수 있다고 했고,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적어도 기일 2~3주 전에 (증거서류를) 내달라고 당부했다”면서 “지난달 24일 검찰의견서가 제출된 이후 지난 1일과 8일 추가의견서와 감정서가 제출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대부분 서증의 제목은 전문가의견서로 ‘1심에서의 진술을 번복한다’ ‘1심이 연구결과에 대한 이해를 잘못했다’는 내용인데, 이는 서증으로서의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고 본다”며 “현재까지 제출된 문건들은 저희가 봤을 때 참고자료나 소명자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있다면 연구서가 서증으로 제출될 수 있고, 그 서증에 대한 상대방의 의견을 듣거나 구체적인 증인신문이 필요하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 없이 ‘지난번에 내가 말한 것을 이렇게 이해한 것은 잘못이다’는 내용이라면 서증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전문분야에 대한 내용이어서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전문가 의견을 빼면 연구결과를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해명하면서도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다시 제출하겠다”고 답변했다.

7월에 결과가 나온다던 환경부 실험보고서에 대해서도 재판부의 지적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환경부가 실시하는 연구결과를 서증으로 제출할 예정이라면 발주자, 연구기관, 주제 등을 밝혀야 하는데 검찰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서증을 낼지 말지도 말하기 어려운 게 아닌지 의문이다”고 했다.

검찰은 “환경부 산하기관이 주관한 역학 관련 실험이고, 두 가지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승인단계에 있다고 한다”며 “주관기관과 목적 등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이 아직 오지 않은 상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이 재판은 실험결과를 다 기다리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입증취지와 관련이 있고 서증으로 낼만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것인데, 환경부의 답이 오지 않아서 밝히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관련 의견을 낼 수 없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고 거듭 검찰을 질책했다.

검찰은 “저희도 공정성 시비를 원치 않는다”며 “최대한 자세한 정보를 재판부과 변호인에게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새로 요청한 감정신청에 대해서도 “입증취지를 보면 1심 기록에 다 있는 내용이고 중복되는 내용이라면 감정은 불필요해 보인다. 입증취지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적법한 증거인가라는 의문이 든다”며 “재검토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쉽게도 준비절차를 종결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며 오는 9월14일 한차례 더 준비기일을 잡았다.

재판부는 검찰에 서류제출 기한까지 정해줬다. 재판부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기일에 임박해 문건이 제출되면 또다시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재발을 막고 꼭 지키라는 의미에서 조서에 기록하겠다”며 “검찰은 기일 2주 전인 8월 30일까지 증거신청 및 공소장 정리나 보완, 변경 등을 접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 이후에 내게 되면 저희가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접수를 받고 싶지 않은데 가능한지는 검토하겠다. 날짜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2002~2011년 CMIT/MIT 등으로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인명 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다. 그는 2002년 SK케미칼이 애경산업과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할 때 대표이사를 지냈다. 안 전 대표는 CMIT/MIT 등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을 알고도 이를 적용한 가습기 메이트 제품을 판매한 혐의다. 그는 1995~2017년 애경산업 대표를 지냈다.

1심은 CMIT·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천식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02~2011년 제조·판매된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옥시싹싹 피해자는 뉴가습기당번과 가습기당번을 합쳐 3578명이다.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 제품 피해자는 총 1415명이다. 지난 5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접수 인원은 7442명이다. 이 가운데 판정이 끝난 생존자는 1025명, 사망자는 25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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