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은행 중소기업 대출 잔액 1년 새 12.87% 상승···약 80조원 증가
중소기업 50.9%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 감당 못해···“사전징후 파악 필요”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코로나19 위기를 딛고 올해 호실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던 은행권이 또 다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오는 9월말로 예상됐던 중소기업·소상공인 이자상환유예 조치의 종료 시점이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의 영향으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자유예 조치는 이미 1년 이상의 긴 기간동안 유지돼왔기 때문에 추가 연장은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은행의 손실흡수 능력 악화는 각 금융지주 배당 등과도 직결돼 있어 금융당국의 결정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원금 상환 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의 종료 시점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지난 3월말 2차 연장을 결정할때만 해도 금융당국은 ‘대출자 연착륙 지원 5대 원칙’을 발표하는 등 더 이상 추가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그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인해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12일부터 2주간 시행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따르면 오후 6시 이후부터는 3인 이상의 사적 모임이 금지된다.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금융지원이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은행권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코로나19 지원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 이자상환 유예 조치는 지난해 4월부터 장기간 지속돼왔기 때문에 이미 관련 리스크가 누적돼 있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지난해 시행 당시보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의 잔액은 더욱 확대된 상태다.
올해 3월말 기준 6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총 684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동기(606조원) 대비 약 8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증가율은 전년(8.21%) 대비 4.66%포인트 상승한 12.87%를 기록했다. IBK기업은행이 166조5220억원에서 192조1340억원으로 15.4% 늘어나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신한은행도 15.3%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가장 증가율이 낮았던 KB국민은행도 8.3%로 전년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현재 은행권은 이자상환 유예 조치만은 종료해달라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대기업에 비해 부실징후를 파악할 자료가 많지 않아 이자 상환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집계되고 있는 연체율, 고정이하여신비율 등의 수치는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효과”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징후를 사전에 인지해서 담보확충 등에 나서는 것이 중요한데 이미 지금도 얼마나 많은 기업이 위기 상황에 있는지 파악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작정 연장을 하게되면 기업 입장에서도 유예된 이자들을 나중에 한 번에 갚아야하는 부담이 생긴다”며 “어쨌든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는 것이지 이자를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50.9%가 이자보상배율 취약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자보상배율 취약 기업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총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 1미만인 회사들로 쉽게 말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이 올해 하반기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도 예상되고 있어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 재확산의 여파로 그 가능성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연내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한계 기업이 늘어날 위험이 더욱 커지는만큼 은행이 선제적 관리에 나설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이 금융지주의 배당 정책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각 금융지주들에게 손실흡수능력 확보를 위해 배당을 배당성향 20% 안에서 실시하도록 한 바 있다. 때문에 금융지주 경영진들은 올해 초 주주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으며 주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중간 배당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코로나19 확산이 장기간 지속돼 국내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경우 금융당국이 다시 한 번 배당 자제령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행히 당장의 중간 배당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각 금융지주의 상반기 실적발표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시장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금융지주들이 호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약 3조5500억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동기(2조6863억원) 대비 30%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배당 제한을 풀기로 결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장을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연말 배당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