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 고민 끝 2254억원 투자유치로 국내 증시에 상장하기로 결정
가파른 성장성에 기업가치 1년만에 2배 넘겨···상장 가능성에 눈길
[시사저널e=한다원 기자]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마켓컬리가 ‘한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기업의 미국 상장 여건이 악화된 데다 한국거래소가 유니콘기업을 적극 유치한 영향이 컸다. 마켓컬리는 2254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표면적으로는 상장에 가까워졌지만, 경쟁기업들의 등장으로 마켓컬리만의 차별점이 사라지고 있어 국내 상장이 가능할지 관심이 모인다.
9일 장보기 앱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2254억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유치를 완료하고, 한국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컬리에 따르면 이번 시리즈 F투자에는 기존 투자사인 에스펙스 매니지먼트와 DST Global, 세콰이어캐피탈 차이나, 힐하우스 캐피탈 등 다수의 투자자들이 참여했다. 신규투자자로는 자산규모 약 520억 달러(한화 약 59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밀레니엄 매니지먼트, 지난 4월 샛별배송 전국 확대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한 CJ대한통운이 참여했다.
그간 컬리는 새벽배송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며 경쟁기업보다 빠른 배송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왔다. 지난해 5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켓컬리가 뉴욕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을 당시 컬리 기업 가치는 8억8000만달러(한화 약 9945억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번에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2조5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1년 만에 기업 가치를 2배 넘게 올린 셈이다.
컬리 기업 가치가 1년 만에 오른 배경에는 ‘가파른 성장성’에 있다. 컬리는 창사 이래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이어왔고, 2015년 매출 30억원에서 지난해는 9530억원을 기록했다. 고객수도 2020년 280만명에서 올해 5월 기준 800만명을 돌파했다. 100원딜, 무료배송 등으로 고객 유치를 해오긴 했지만 신규 고객 재구매율도 71.3%에 달하는 등 충성 고객을 대거 확보했다.
◇문제는 적자, 미국 상장→한국으로 바꾼 속내는?
다만 컬리는 매출과 고객수가 늘어나는 동시에 적자 폭도 커지고 있다. 마켓컬리 영업손실액은 2015년 54억원에서 2018년 337억원, 2020년 116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여기에 컬리가 올해들어 고객 유치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쏟아 부었다는 점에서 올해 적자 폭은 지난해보다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컬리 입장에서는 성장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미국 증시 방식이 더 적합하다. 그러나 컬리가 한국 증시로 방향을 튼 데는 ‘한국거래소가 스타트업 상장 문턱을 낮췄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3월 코스피 상장 규정을 완화해 시가총액이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은 적자여도 상장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또 정부와 국회가 비상장사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마켓컬리를 이용하는 고객, 생산자, 상품 공급자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 증시가 적합하다고 판단이 들었다”며 “그동안 해외증시와 한국증시 상장을 동시 고려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들어 한국거래소가 유니콘 기업의 국내 상장 유치를 위해 미래 성장성 중심 심사체계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와 컬리가 한국 증시 상장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컬리는 이번에 확보한 시리즈 F투자금을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다. 상품 발주, 재고관리, 주문처리, 배송 등 물류 서비스 전반에 걸친 효율성과 정확성을 제고할 데이터 인프라 고도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