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후 공모가 낮아진 사례 연이어
업계 일각선 시장 개입 우려···되레 과열 부추긴다는 주장도
고평가 거르는 장치 수요예측 있어···관련 제도 강화 필요
[시사저널e=송준영 기자] 올해 하반기 IPO(기업공개) 최대어로 꼽히는 게임사 크래프톤이 최근 정정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몸값을 낮췄다. 이번에 책정한 몸값은 공모가 상단 기준 24조3510억원으로 당초 제시한 몸값 보다 4조5000억원 가량 줄었다. 이를 위해 실적 산정 방식을 바꾸었고 비교기업도 대폭 수정했다. 올해 최대 IPO 기대주가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공모가 하향 조정은 다른 IPO에서도 나왔다. 진단키트 제조사인 SD바이오센서는 두 차례에 걸친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공모가를 낮췄다. 이 역시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되는데, 최초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기업 선정이 적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이례적이라 평가했다. 두 사례 모두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이후 공모가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일반적으로 금융당국은 증권신고서의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중요 사항이 거짓 기재된 경우 등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이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을 때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청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 공모가와 같이 시장에서 평가되는 부분은 최대한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IPO 기업의 고평가 여부는 기관 수요예측 단계에서 걸러진다. 수요예측은 사전적으로 수요분석을 기초로 해 장래의 수요를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IPO의 경우 기관마다의 분석과 판단에 따라 다양한 가격 제시가 이뤄지는 장이기도 하다. 주관사가 제시한 기업의 가치가 평가되는 곳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제 수요예측 단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기업의 경우 상장을 철회하거나 몸값을 낮춰 상장을 다시 시도하기도 한다.
이에 일각에선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기업가치와 같이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에 보이지 않는 규제가 생기고 관례적으로 굳어지게 되면 결국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무의미해지고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여기에 공모가가 낮아졌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되레 과열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IPO 시장 과열로 수요예측 단계에서 가격 발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다. 특히 IPO 대어들의 경우엔 물량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 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시장 과열에 편승해 무리하게 몸값을 올리는 사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당국은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바로 세우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수요예측의 문제점을 오랫동안 제기해왔다.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중 가격 책정 능력이 없는 이른바 허수가 많아졌고, 일부의 경우 단체 채팅방을 통해 수요예측에서 제시할 가격을 합의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했다. 이를 바로 잡고 더 질 높은 가격발견 제도를 만드는 것이 금융당국에 요구되는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