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수주 사업지와 브랜드명 두고 갈등···올해 들어 7곳에서 시공사 지위 잃어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DL이앤씨가 수주했던 정비사업장에서 고급 브랜드인 ‘아크로’(ACRO)를 적용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기존 ‘e편한세상’보다 향후 시세 상승 견인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업장에선 계약 해지가 이어지고 있다. DL이앤씨가 시공사 지위를 잃은 사업장은 올해 들어서만 7곳에 달한다. 2조원에 달하는 수주금액을 허공에 날리게 됐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최근 서울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2019년 4월 수주 이후 1년 2개월 만에 시공사 지위를 잃게 됐다. 그동안 e편한세상 대신 아크로를 요구하는 조합과 갈등을 빚어왔다. 양측이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계약 해지로 이어졌다. 신당8구역 재개발은 공사비만 3000억원 규모로 지상 최고 25층, 14개 동, 1215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DL이앤씨는 5월에도 비슷한 이유로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 시공권을 박탈당했다. 광천동 재개발은 25만5284㎡ 부지에 지상 33층, 61개 동, 6108가구 규모 초대형 프로젝트다. 공사금액만 1조원을 넘는다. DL이앤씨 컨소시엄(DL이앤씨·롯데건설·현대산업개발·금호산업)이 2015년 12월 수주했다. 조합은 컨소시엄 측이 고급 아파트 브랜드 적용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를 단행했다.

두 사업장을 포함해 올해 들어 DL이앤씨가 시공권을 잃은 사업장은 7곳에 달한다. 올해 1월 인천 주한10구역을 시작으로  ▲부산 범천4구역 ▲부산 서금사5구역 ▲청주 사직1구역 ▲마산 회원2구역 등에서 계약 해지가 이어졌다. 무산된 공사비 규모만 약 2조원을 육박한다. 일부 사업장은 철거까지 완료된 상태라 그동안 투입된 매몰비용에 대한 손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들이 아크로를 요구하는 배경은 고급 브랜드가 향후 시세 상승 견인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지난달 39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1억1706만원으로 같은 평형대 역대 최고가다. 선호도 역시 아크로가 높은 편이다. 지난해 다방이 발표한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브랜드 순위에서 아크로는 31.1%를 차지하며 현대건설의 ‘디에이치’(29.9%)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DL이앤씨는 기존 조합들의 잇단 아크로 적용 요구에 대해 난감해 하고 있다. 고급 브랜드를 남발할 경우 희소성이 사라지고 오히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는 부작용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조합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DL이앤씨는 아크로의 희소성·고급성을 내세워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며 “두 가지 특징이 사라진다면 수주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기존 조합들이 계약 해지를 무기로 아크로 적용을 요구하고 있어 DL이앤씨가 고심에 빠진 모습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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