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설립·운영 관여하지 않았다면 각서 필요 없었을 것”
“법적 책임 염려해 각서 요구···형사책임 성립에도 영향 없어”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 씨가 2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하고 요양급여를 편취한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가 2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6년 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아무개씨의 ‘불기소 처분’의 근거가 됐던 책임면제각서가 2021년 재판에서는 재판부의 유죄 심증을 굳히는 증거로 활용됐다.

장모 최씨 스스로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염려해 동업자들에게 각서작성을 요구했고, 공범 사이 작성된 각서는 형사책임 성립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결론이다.

요양급여 22억원을 부정수급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장모 최씨에게 2일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한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3부는 그가 동업자들로부터 받은 ‘책임면제각서 및 인증서’를 유죄의 증거로 봤다.

이 각서는 지난 2015년 요양병원 사건 경찰 수사 당시 동업자들만 기소되고 장모 최씨는 책임을 피하게 된 증거 중 하나로 언급되는 서류다.

문제의 의료재단 이사장에 등재돼 있던 장모 최씨는 2014년 7월 정식으로 사임했는데, 약 두달 전인 5월19일 주범 주아무개씨에게 ‘의료재단 및 병원 운영에 관여한 바 없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요구했다.

각서에는 ‘이 사건 의료재단은 피고인이 병원 경영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으므로 민·형사적 사항에 대하여 사임한 피고인에게 위 모든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튿날 작성된 인증서에는 ‘사임하신 피고인에게 민형사상 일이 발생시 책임질 것을 각서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책임면제각서 및 인증서를 교부받았던 사정은 피고인의 형사책임 성립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오히려 피고인이 그 이전에 이 사건 의료재단 및 병원 설립·운영에 관여했다는 점을 추단케 한다”고 밝혔다. 추단(推斷)이란 추측하여 미루어 판단한다는 법률용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주범 주씨가 여러 사람에게 의료재단 이사장을 시켜준다고 하면서 돈을 많이 받으러 다니고, 또 다른 동업자가 구아무개씨가 손해를 많이 봤다고 해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각서 등을 교부받았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피고인 자신이 의료재단 및 병원의 운영에 관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상황이 발생할까 염려했고, 피고인이 진정으로 설립·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없어 자신이 법적 책임을 질 염려가 없다면 굳이 주범에게 이러한 각서를 요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주범 주씨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이 이사장에서 사임하지 않으면 이사장 인감도장을 사용할 수 없어 아무런 행위를 할 수 없었다” “각서 등을 작성해줘야 이사장 사임에 필요한 서류를 준다고 해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각서 및 인증서를 작성·교부했다”고 진술한 점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각서와 인증서 외에도 장모 최씨가 ▲의료재단 설립, 존속 및 기본재산 취득, 유지에 관여한 점 ▲병원 인력 및 시설 충원·관리에 관여한 점 ▲직원 월급 등 자금을 조달한 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요양급여 등 병원 수익이 발생하면 자신에 대한 차입금 변제 명목으로 회수해간 점 등을 지적하며 “의료법위반 범행에 대해 본질적 기여를 통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은 의료재단 및 병원 설립과 유지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고 사위를 통해 병원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며 “(요양급여 부정수급 사기) 범행을 중단시키거나 피해확산을 막기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책임면제각서를 받는 등 자신의 책임을 은폐·축소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질타했다.

장모 최씨는 동업자들과 공모해 영리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2013년 5월∼2015년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원을 지급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주범 주씨는 징역4년이, 나머지 2명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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