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심사 의무 '뒷짐'···대다수 거래소, 은행 실명계좌 받기 어려워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개정되면서 문을 닫게 된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정부나 은행을 상대로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나서지 않고 민간 금융사인 은행이 ‘종합 검증’을 하는 방식으로 대다수 거래소는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존폐 위기에 섰다는 이유에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9월 24일까지 특금법에 따라 신고를 마쳐야 한다. 관련 신고를 위해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ISMS, Information Security Management System) ▲실명확인된 입출금계정 ▲대표자 및 임원의 자격요건 등이 요구된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정해진 기간까지 특금법 신고를 마치지 못할 경우 헌법소원이나 소송을 제기해 위기를 벗어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대부분의 거래소들은 개정된 특금법 신고 요건 가운데 은행 실명계좌 획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금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 부과 대상에 포함된다. 이에 거래소는 은행들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았다는 확인서 등을 9월 24일까지 FIU(금융정보분석원)에 제출하고 신고 절차를 마쳐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거래소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부분은 은행이 계좌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실질적 검증 책임을 맡고 있는 점이다. 은행들은 자금세탁 사고 연루에 대한 가능성 때문에 거래소 검증 작업 자체를 꺼리고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거래소는 은행의 심사 기회마저 박탈 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케이뱅크, NH농협은행, 신한은행 만이 최근 실명계좌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코인원, 코빗)에 대해 '자금세탁 위험평가'를 하고 있다. 

거래소들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부작위(행위를 할 의무가 있는 주체가 행위를 하지 않음)'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의 주무부처인데도 불구하고 기준을 정하고 거래소를 걸러내야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채 실명계좌 발급을 특금법 신고의 핵심 조건으로 대부분의 거래소는 검증의 기회를 얻을 수 조차 없단 주장이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은행의 금융소비자법(금소법) 위반과 극소수 거래소의 독과점 문제를 거론할 전망이다. 은행이 제대로된 검증 작업 없이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한다면 이는 금소법 위반 소지가 있단 주장이다. 또 은행의 심사를 받고 있는 4대 거래소가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우월적 지위는 특혜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거래소와 코인 발행 주체인 재단(프로젝트) 사이에선 '줄소송' 이 제기될 분위기도 감지된다. ‘피카’ 코인의 발행주체인 피카프로젝트는 자사 코인 상장 거래소인 업비트를 상대로 소송과 상장폐지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 등을 예고했다. 업비트는 지난 18일 24개 코인을 상장폐지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하나인 피카 코인은 상장할 당시 업비트가 '상장 피(수수료·대가)'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는 가상화폐에 대한 법 규정이 없다시피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거래소, 코인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추진되다보니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금법 가운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이 해결되지 못하면 혼란은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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