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법원 “원고 소송 각하, 계약 당사자 간 해결하라”
넷플릭스, 입장문서 기존 입장 되풀이
SKB “법원 합리적 판결 환영···넷플 항소 시 반소 검토 가능성”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국내 통신사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다만 법원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지불에 대한 입장은 양사 협상에 맡긴다고 밝히면서 향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판결 후 넷플릭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법리 검토 후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했고 SK브로드밴드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 법원 “협상 의무는 있지만 계약은 당사자 간 결정할 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25일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 민사소송 1심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은 ‘기각’을, SK브로드밴드와 망 사용료 협상 의무가 없다는 협상의무부존재 확인은 ‘각하(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내리는 판결)’했다. 청구 비용은 전액 넷플릭스가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협상의무 확인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명된다”며 “대가 지급의무를 보면 원고와 합의 하에 직접 연결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자유의 원칙상 계약을 체결 및 대가 지급 여부는 당사자 계약에 의해야 하고 법원이 체결에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고 판단했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협상이 결렬된 뒤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협상 중재 재정신청을 냈지만 넷플릭스는 돌연 이를 거부하고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법원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법률대리인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SK브로드밴드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해 1년 2개월간 법적 공방을 이어왔다.
그간 넷플릭스는 앞선 3차례 변론에서 본인들과 같은 콘텐츠 제공자(CP) 의무는 이용자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데까지 있기 때문에 콘텐츠 ‘전송’의 대가를 SK브도르밴드와 같은 인터넷제공사업자(ISP)에게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SK브로드밴드는 ‘접속’과 ‘전송’은 현행법상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넷플릭스 국내 데이터 트래픽이 서비스 개시 후 약 3년 만에 30배가 증가한 상황에서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이미 미국 컴캐스트, AT&T, 버라이즌, 프랑스 오렌지 등 다수의 ISP에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단 점도 지적했다. 아울러 시장논리로 보면 회사는 최종 이용자에게 서비스가 전달된 이후까지도 품질을 보장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카카오, 왓챠 같은 국내 CP들이 경영에 무지해서 ISP가 제공하는 전용회선, CDN과 같은 기업상품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이 아니란 주장이다.
◇ 법원 판결에도 넷플릭스-SKB 간 공방은 지속될 전망
이번 판결은 법원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 채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협상 의무와 관련 계약 당사자 간 계약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 만큼 법원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망 사용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넷플릭스는 판결 직후 입장문에서 “ISP가 콘텐츠 전송을 위해 이미 인터넷 접속료를 지급하고 있는 개개 이용자들 이외에 CP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소비자가 이미 ISP에 지불한 비용을 CP에도 이중청구하는 것으로 CP가 아닌 ISP가 부당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라며 “전 세계 어느 법원이나 정부 기관도 CP가 ISP에 망 사용료를 지급하도록 강제한 예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사실상 이번 판결에 불복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실제 항소 여부는 판결문 검토 후 밝힐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송 판결 이후에도, 넷플릭스는 공동의 소비자를 위한 국내 ISP와의 협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법원의 판결문을 검토해 향후 입장을 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SK브로드밴드는 “이번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환영한다”며 “SK브로드밴드는 앞으로도 인터넷 망 고도화를 통해 국민과 국내외 CP에게 최고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측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세종의 강신섭 변호사는 판결 직후 “원고(넷플릭스)는 여러 이론을 들어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가 없다고 했음에도 재판부가 이를 기각한 것은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 기업을 차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계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려면 우리 법령을 준수하고 우리 문화를 존중하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넷플릭스는 전기통신사업법이나 민법의 법리를 뛰어넘는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법원이 냉정하게 판단 한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SK브로드밴드는 향후 넷플릭스를 상대로 부당이득 청구 소송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강 변호사는 “소송 재판기일이 총 3일 잡혔는데 좀 더 많이 열렸다면 넷플릭스에 반소를 제기하려고 했다. 회사에서 결정할 문제겠지만 만약 넷플릭스 측에서 판결에 불복해 고등 법원으로 가게 된다면 그때 반소 제기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하반기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진입이 예고된 가운데 이번 판결은 국내 ISP와 해외 CP 간 망 사용료 계약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은 KT나 LG유플러스의 경우에도 재계약 시 해당 사업자에 망 사용료를 별도 요구하거나 계약 조건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