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협상권 부여하고 외교 지렛대로 활용···美 모더나 250회분 지원 배경 중 하나로 TSMC 반도체 생산능력 꼽히기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세계적으로 반도체 패권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만정부와 TSMC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적극적 지원 하에 정부와 공조하며 외교파트너로서 함께 활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연스럽게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우리 정부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23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TSMC,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에게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 구매 협상 권한을 부여했다. 중국에선 민간기업이 협상에 나서도 자국 제약사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엔 백신과 관련한 대만정부와 중국의 갈등 등도 있지만, TSMC에게 권한을 부여해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적 측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TSMC의 반도체 생산능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알고 TSMC에게 협상권을 주는 것이 백신을 구하는데 용이할 것이라고 본 현명한 결정”이라며 “우리나라도 삼성전자가 백신 구하기에 나선다면 효과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부는 대만에 모더나 백신 250만회 분을 파격적으로 지원키로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도 TSMC가 있는 대만이 핵심 전략물자인 반도체 생산의 중추기지라는 점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대만은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을 펼쳤던 우리와 달리 전통적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을 세웠던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물론 당시엔 정치적 배경 등이 작용해 대기업 육성 정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며 파트너십을 발휘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대만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위해 농지에 쓸 물을 끌어다 쓰게 해줄 정도로 반도체 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정부와 국민들 자체가 한 팀으로 기업을 신뢰해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정부가 TSMC를 지렛대 삼아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외교에 나서는 가운데, 파운드리 부문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우리 정부도 파트너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의 경우 대만과 반대로 대기업 위주 육성정책을 펼쳐오다가 각종 규제 등으로 책임과 분배를 강조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세계가 반도체 전쟁 중인 만큼, 삼성전자와 정부의 파트너십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패권이 미국 중심으로 정리 돼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전세계 팹리스(반도체 설계만을 하는 회사)의 60% 이상이 미국에 있다는 점만 생각해도 파운드리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우리 정부가 어느 쪽에 전향적으로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스로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팹리스는 반도체 생산을 도맡는 파운드리의 고객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론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백신 확보 등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TSMC 사례에서 보듯 현실적으로 대외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인물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만의 TSMC 창업자 모리스창 역시 기업인의 신분이었지만 미국 내 네트워크가 탄탄해 외교일선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재용과 관련, 정부 여당에선 가석방에 대한 고려 이야기가 나오지만 재계에선 더욱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사면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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