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 “업무 유동성 커···탄력근로제 사후 협의로 바꿔야”
노동계, 무노조 사업주 근로자대표 지정 가능 제기···“과로 위험성 커”

2019년 11월 18일 광화문네거리 / 사진=연합뉴스
2019년 11월 18일 광화문네거리.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준영 기자] 다음달부터 50인 미만 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됨에 따라 벤처업계는 유동적 업무 특성을 고려한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반면, 노동계는 근로자 대표제의 허점으로 추가 연장근로 등이 가능해 근로시간 감축 실효성이 낮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5~49인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한다. 50인 미만 기업들은 1주일 법정근로시간이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다. 2018년 7월부터 기업 규모별로 점차 도입을 확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연평균 근로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긴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23일 벤처업계는 주 52시간제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유동성이 큰 업무 특성이 반영돼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벤처기업의 90% 이상이 50인 미만 기업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취지에 동의한다. 그러나 벤처 업계의 업무 및 문화와는 주 52시간제가 맞지 않다. 일이 몰릴 땐 몰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여유가 있다. 벤처기업들이 직원들 출퇴근 시간과 휴가 사용을 유연하게 이용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탄력근로제를 활용해 업무가 몰릴 때 근로시간을 늘리면 된다고 하지만, 근로제 대표와 사전에 탄력근로제 사용 기간을 정해야 한다. 프로젝트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는 데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며 “탄력근로제 사용은 사후 협의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벤처업계는 주 52시간제 도입 시 추가 고용에 대한 어려움도 제기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IT와 4차 산업 관련 핵심인력은 억대 연봉인 경우도 있다”며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며 신규 채용한 근로자 1인에 최대 80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핵심인력 채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주 52시간제 도입을 1년 늦춰 달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계도기간 없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다음 달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제도 도입을 3년 전 예고해 준비 기간을 뒀고 경영계 요청에 따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6개월로 확대 및 특별연장근로제 인가 사유 확대 등으로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는 이유에서다. 탄력근로제는 사업주가 근로자 대표와 합의하면 일정 기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한 주 최대 64시간까지 노동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제도다.

정부는 또한 주당 근로시간의 제한이 없는 선택근로제의 경우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단위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5~29인 기업은 내년 말까지 근로자 대표와 합의 시 1주 8시간의 추가 연장근로도 가능하도록 했다.

반면 노동계는 근로자 대표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주 52시간제의 실효성이 낮아진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사업주는 추가 연장근로와 탄력근로제를 이용하려면 과반수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경우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과반수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근로자 대표가 노조 대신 사업주와 이러한 사항들을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에는 근로자 대표의 선출 방법, 지위와 의무 등에 관한 규정이 없다. 이에 사업주는 임의로 근로자 대표를 지정해 노동자들이 원치 않아도 추가 연장근로와 탄력근로제를 사용할 수 있다. 벤처기업 등 50인 미만 사업장은 대부분 노조가 없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근로자 대표의 허점으로 인해 주 52시간제를 도입해도 과로의 위험성이 여전히 크다”며 “IT 등 일부 업종의 경우 밤 늦도록 일하는 경우가 많고 과로사 위험도 크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근로자 대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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