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 요구···교섭 결렬될 경우 파업 가능성도
현대차, 구조조정 대신 자연감소분으로 대응 계획 세웠으나 노조 요구안에 당혹
정년 연장할 경우 회사 경쟁력 악화 및 신규 일자리 문제도
업계 “아이오닉5 중요한 시점에 노조 파업할 경우 시장 선점 어려워···노조가 이 점 노려”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강행할 경우 하반기 미국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아이오닉5 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전날 소식지를 통해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을 경우 ‘파국’ 뿐이라고 밝혔다. 교섭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파업을 강행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노사는 22일부터 24일까지 집중교섭에 돌입한다. 업계에선 노조 측 요구안을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내달 파업 강행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파업을 먼저 생각하고 교섭에 임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만 우리가 가진 최후의 카드가 파업인 만큼, 교섭이 결렬될 경우 파업을 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및 성과급 당기 순이익 30% 지급,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 중 노사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정년 연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노조는 만 60세인 정년을 최대 만 64세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입장에선 노조 측 의견을 수용하기 쉽지 않다. 전기차 전환에 따른 인력 구조 때문이다.
현대차는 올해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전기차로 본격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는 현대차 뿐 아니라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전반적 흐름이다. 전세계 각 국에서 친환경을 강조하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자동차 업계도 전기차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 대비 부품수가 30% 이상 적어 필요 생산 인력도 그만큼 적다. 업계에선 기존 대비 60~70% 인력이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최근 대규모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폴크스바겐, 르노그룹, 제너럴모터스(GM), 다임러, BMW 등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작년부터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미래차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투자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5000명 직원을 감원하기로 했으며, 다임러도 2025년까지 2만명을 줄일 계획이다. BMW와 GM도 1만5000여명의 직원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같은 흐름에도 현대차는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는 대신 정년 퇴직 등 자연감소분을 통해 자연스레 인력 구조를 맞춰나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면서 현대차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정년 요구안을 받아들일 경우 그만큼 고연봉 생산직 비중이 늘어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또한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차와 구조가 완전히 달라 기존 생산직들의 경험도 그다지 필요없는 상황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노조 요구대로 정년을 연장하게 될 경우 신규 일자리 창출에 문제가 생긴다”며 “전기차 시대를 맞아 해외 기업들은 자동화 시설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정년을 연장하면 현대차는 고비용·저효율 생산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년 연장은 국내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현대차가 결단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정년 연장에 대해 노조가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근 노조가 현대차의 미국 전기차 생산 시설 구축에 크게 반발한 것도, 정년 연장 카드를 통과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올해 말 예정된 차기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노조 집행부가 임기 연장을 위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노사간 교섭이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파업까지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해 파업은 현대차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 단순 생산 차질 뿐 아니라 차기 전기차 시대 선점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반기 아이오닉5가 국내는 물론 유럽, 미국 등에 본격적으로 판매되는 가운데 반도체 수급 사태에 파업까지 겹칠 경우 공급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신규 전기차를 내놓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한발 먼저 아이오닉5를 출시했지만, 생산차질이 생길 경우 시장 선점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아이오닉5 생산량을 월 4000대 이상으로 늘리며 예정된 생산 계획을 맞춰 나갈 계획이다. 아이오닉5는 국내에서 예약대수만 4만대를 넘겼으며, 유럽에서도 사전계약 첫날 3000대 물량을 모두 완판했다. 하지만 반도체 문제로 지난 4~5월 2033대 판매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전기차 주력 모델인 아이오닉5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노조에서도 잘 알고 있다”며 “하반기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계획대로 생산이 이뤄져야 하는데, 노조가 이 점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넘어질 경우 노조측 요구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