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임시국회 논의도 무산···의료계 반발 ‘여전’
개인 의료정보 유출 우려 등 설득력 없어···고객 편의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12년만에 최고의 ‘적기’를 맞이했다는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 통과가 또 다시 안갯속으로 빠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당의 전재수·고용진·김병욱·정청래 의원과 야당의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올해 5월에는 금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5대 적극행정 중점과제로 선정하자 보험업계에서는 지난 2009년 이후 12년째 해결하지 못한 ‘숙원사업’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점차 불안감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이달 임시국회 기간동안 논의될 것으로 예상됐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원회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윤관석 정무위원장의 자리가 아직 공석으로 남아있어 쟁점 법안들을 심사하기 어렵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법안 계류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다.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5개 단체는 6월 임시국회가 열렸던 지난 16일에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법안의 폐기를 요구한 바 있다.

의료계는 의료정보가 민간 보험사에 축적될 경우 해당 정보들이 보험가입 거절과 보험료 인상 등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가 제3자에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실손보험 청구를 간소화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보험업계는 의료계의 이러한 주장에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객 동의없이 보험사가 독단적으로 고객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현행 보험업법 상으로도 불가능하며 개정안에는 추가 안전장치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운영에 관한 사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담당자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한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12년동안 동일한 이유로 반대를 해오자 이제는 그 순수성마저 의심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산하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위탁 기관으로서 데이터를 모으게 되면 의료기관의 비급여 비용 내역이 통제될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가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을 보완·보충하는 민간의료보험 상품으로 가입자 수는 약 3400만명에 달한다. 치료 목적의 의료비를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보험상품지만 아직까지 가입자들은 병원이나 약국에서 진료비 영수증 등 서류를 직접 발급받아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가입자가 당연한 권리인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물론 보험사들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로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새로운 상품과 수익모델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만을 위해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의료계와는 달리 보험업계의 입장은 소비자의 편의 증진과 그 방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소비자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논의를 진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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