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 불안 감안한 결정”···4분기 인상 압력 더 커져
“연동제, 독점기업에 부적절···정부 입김 배제된 독립기관 필요”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히 설치돼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히 설치돼 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3분기(7~9월)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연료비 연동제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감안한 결정으로 향후 가격 인상 압력이 더 커졌다는 분석과 함께 전기요금 책정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제기된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는 이날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는 2분기(3~5월)와 같은 kWh당 –3.0원으로 책정키로 결정했다. 이에따라 소비자들은 전분기와 동일한 전기요금을 납부하면 된다.   

한전은 지난해 말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올해부터 전기 생산에 들어가는 연료비를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은 연료비 하락 추세를 반영해 kWh당 3원을 내렸고 2분기에는 동결 조치했다. 3분기의 경우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3~5월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인상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실적연료비 산정에 들어가는 유연탄, LNG, BC유의 3~5월 세후 기준 무역통계가격 평균을 보면, kg당 유연탄은 133.65원, LNG는 490.85원, BC유는 521.37원이었다. 2분기 기준 시점(지난해 12월~올해 2월) 대비 각각 18% 상승, 4% 하락, 18% 상승 했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원칙대로라면 3분기 전기요금 조정단가는 3원 오르는 게 맞지만 결론은 동결이었다.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제 연료가격 상승 영향으로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요인이 발생했으나 코로나19 장기화와 2분기 이후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통보했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9년 1개월 만에 가장 많이 치솟으면서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 불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은 ‘6월 경제동향’에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획재정부도 ‘6월 최근 경제동향’을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봤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결정으로 한전이 재정적 손실을 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해 한전이 흑자가 많이 났다. 원칙대로 하자면 3원 올려주는 게 맞지만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어렵고 언론을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 물가 상승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분기까지는 동결을 하고 4분기에는 가급적 정상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음달부터 월 200㎾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일반가구의 전기요금이 기존 대비 2000원 오르는데 여기에 전기요금까지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도 동결 결정에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2분기 전기요금 결정 때도 당시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하면 kWh당 2.8원 올렸어야 했지만 공공물가 인상을 자극하고 서민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1분기와 같이 동결했다.

정부가 두 분기 연속 연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연료비 연동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이기에 가격을 막게 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도를 만들었지만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더 우선시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력시장 전문가는 “전기 요금을 워낙 올리지 못하다보니 도입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가 계속 이렇게 요금 인상을 막으면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게 된다”고 덧붙였다. 

당장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압박이 커진 상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 유가 전망과 관련해 “미국 생산량 정체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증산, 이란 중질유 공급 증가를 상쇄하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코로나 사태 기저효과로 원유시장 수요 우위가 지속되고 재고 감소로 올해 하반기 WTI 기준 배럴당 70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 압력으로 오랫동안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이를 좀 개선하고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이 제도도 우리 현실에 맞는 제도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력시스템이 독점인데 독점 회사가 연료비 연동제를 하게 되면 연료비를 비싸게 사와도 아무런 제어장치가 없게 된다”며 “아무리 비싸게 사와도 그걸 연동해서 올려주기에 보통 독점회사에 연료비 연동제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기요금에 간섭하는 일이 없도록 독립적인 규제 기관이 요금을 결정하는 외국의 시스템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정 위원은 “궁극적으로는 전기요금 규제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하면 정부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계속 관여할 수 있다”며 “독립적 규제기관을 만들어 전기요금을 관리하도록 하면 이런 문제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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