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책, 여론에 밀려 손바닥 뒤집듯···바닥난 신뢰, 국민 혼란만 가중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과천청사 부지 공급계획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10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지난해 8·4 부동산대책에서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4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절반은 공공임대주택으로 계획됐다.

과천 주민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과잉개발 우려와 공원 조성 무산, 임대주택 입주에 따른 집값 하락 등을 내세우며 반대에 나섰다. 급기야 주민들이 김종민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 소환에 나섰다. 정부는 결국 정부과천청사 부지 공급계획을 철회했다. 이를 두고 주민 반발에 정책이 뒤집히는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습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는 1만 가구가 공급될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훼손과 교통난을 이유로 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과천시처럼 오승록 노원구청장 주민 소환 절차를 추진 중이다. 오 구청장이 태릉골프장 개발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또다시 반응했다. 태릉골프장 공급 가구수를 1만가구에서 절반으로 줄이는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천·태릉 사례 이후 용산이나 마포 주민들도 집단행동에 들어가면서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공공재개발도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당초 취지와 맞지 않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공공재개발이 추진 중인 흑석2구역은 아파트 분양가가 당초 예상보다 10% 상승한 3.3㎡당 4274만원에 책정됐다. 공공이 아닌 민간 재개발로 추진할 때 예상분양가(3.3㎡당 3942만원)보다 8.42%나 비싸다. 웬만한 강남 아파트 분양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 같은 고분양가 책정이 가능했던 배경은 주민들이 분양가가 낮다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공공재개발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결국 분양가를 올려줬다. 공공이 주도해서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다른 공공재개발 사업지도 흑석2구역의 사례를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와 D 같은 주택 공급 계획과 관련된 광역교통계획도 주민과 지자체의 반발이나 요구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있다.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특히 주택 공급 계획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매주 진행하고 있는 ‘위클리 주택공급 브리핑’ 역시 계획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기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다. 여론과 대선을 의식한 의미 없는 숫자 놀이는 그만할 때가 됐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주택 공급 계획을 추진하면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재검토해야 한다.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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