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업계 퇴직연금 잔액 1분기만에 4000억원 감소···DB형 이탈 ‘뚜렷’
증권업계, 개인형IRP 적립금 20% 이상↑···업권간 격차 3조원에 불과

자료=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자료=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그래프=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퇴직연금 시장 내 업권 간의 경쟁 구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로 은행권에 이어 2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생명보험업계가 최근 금융소비자들의 직접 투자 열풍 등으로 인해 부진을 겪고 있으며 손해보험업계 역시 동일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증권사들은 수수료 무료 혜택 등을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개인형IRP 고객을 유치하고 있어 이르면 올해 안에 생보업계를 역전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동안 두 업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지난해 말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말 기준 생보업계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56조4959억원으로 지난해 말(56조9338억원) 대비 0.7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손보업계 역시 같은 기간 13조2975억원에서 13조752억원으로 1.67% 줄어들었다.

구체적으로 생보업계의 경우 확정급여형(DB형)이 45조2528억원에서 44조5438억원으로 1.57% 줄어들었으며 확정기여형(DC형)은 9조903억원에서 9조3688억원으로 3.06% 늘어났다. 개인형IRP 역시 2조5460억원에서 2조5833억원으로 1.47% 증가했다. 운용실적에 따라 향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지는 DC형과 개인형IRP는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사전에 정해진 금액을 받는 방식의 DB형은 고객들로부터 점차 외면받고 있다. 지난해 부동산·주식·암호화폐투자 열풍으로 재테크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손보업계도 이와 비슷하다. DB형은 지난해 말 11조1785억원에서 올해 1분기 10조9480억원으로 2.06% 감소한 반면 DC형은 1조6530억원에서 1조6702억원으로 1.04% 증가했다. 개인형IRP는 4626억원에서 4570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생·손보업계와는 달리 은행권과 증권업계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권은 지난해말 130조4385억원에서 올해 1분기 133조2507억원으로 적립금이 2.16% 늘었으며 증권업계는 51조6605억원에서 53조1386억원으로 2.86%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들의 경우 개인형IRP부문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1분기만에 적립금을 20% 이상 증가시켰다. DB형 적립금은 33조6106억원에서 32조7992억원으로 2.41% 줄어들었으나 DC형은 10조4844억원에서 11조2288억원으로 7.10% 늘어났고 개인형IRP 적립금은 7조5485억원에서 9조1106억원으로 20.69%나 증가했다. 지난 4월 삼성증권의 ‘삼성증권 다이렉트IRP’ 출시를 시작으로 유안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들이 개인형IRP 수수료 제로 정책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증권업계 선전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르면 올해 안에 증권업계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생보업계를 역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1분기말 기준 두 업권의 적립금 차이는 3조3573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5조2733억원에 달했던 격차가 단 1분기만에 2조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두 업권의 상반된 흐름은 수익률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생보업계의 경우 지난 1분기 DB형에서 대부분의 보험사가 1% 후반 또는 2% 초반대의 수익률을 보였다. 교보생명만이 3.31%의 수익률을 기록했을뿐 그 다음으로 수익률이 높은 삼성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은 각각 2.14%, 2.05%의 수익률에 머물렀다. 반면 증권업계의 경우 신영증권이 8.45%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거뒀으며 2위 대신증권(3.44%)도 교보생명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분기 머니무브를 이끌었던 개인IRP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생보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거둔 곳은 6.70%의 교보생명이며 미래에셋생명(5%)과 삼성생명(3.94%)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반면 증권사 중에서는 신영증권이 27.39%의 높은 수익률을 거뒀으며 한국포스증권(13.7%), 유안타증권(13.4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4.6%의 수익률을 기록한 현대차증권을 제외한 모든 증권사들이 교보생명(6.70%)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은행이나 보험사의 경우 예금과 같이 안정적인 상품이 많은 반면 증권사를 통해서는 ETF, TDF 등 다양한 곳에 투자할 수 있다”며 “증시 호황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연말에 크게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한동안은 증권사로의 고객 이동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수익률보다 안정성을 중요시 하는 고객들도 있겠지만 (해당 고객들은) 어차피 은행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권사처럼 수수료 면제 등 이벤트를 시행하는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관련 수수료가 이미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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