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12명, 일본 정부 상대 1억원 손해배상 소송 승소 확정
재판부 “청구권 있고 비엔나협약과 무관···인권침해, 국가면제 대상 아냐”
일본, 결정문 수령 회피 가능성···‘재산조회’ 등 후속 조치에 기일 소요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우리 법원이 일본 정부에 한국 내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재산명시 결정서를 보냈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채권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최근 승소로 확정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는 지난 9일 일본 정부에 “채무자(일본정부)는 재산상태를 명시한 재산목록을 재산명시기일에 제출하라”는 주문이 적힌 결정서를 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산명시는 실제 압류 가능한 일본 정부의 재산을 확인하는 취지로 승소금액을 받기 위해 진행되는 강제집행 절차다. 재판부는 이번 강제집행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고려돼선 안되고 법리적으로도 적법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본연의 권한을 각자 행사하되 그 본연의 권한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며 “확정판결에 따라 채무자에 대한 강제집행의 실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대일관계의 악화, 경제 보복 등의 국가 간 긴장 발생 문제는 외교권을 관할하는 행정부의 고유 영역이고 사법부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이 사건 강제집행신청의 적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 사항에서 제외하고 법리적 판단만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채권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소송에 의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있다”며 “이 사건 역시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과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채권자들의 강제집행 신청이 비엔나협약 제27조에 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없고, 지난 2015년 12월28일자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는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정부의 합의에 불과해 비엔나협약의 위반 여부와는 더욱 관계가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번 결정은 국내 판결로 국가 간 조약(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이행하지 않는 행위와 무관하다는 내용이다. 비엔나 협약은 ‘조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과거 행위가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도 판단했다. 국가면제란 국가 평등의 원칙에 따라 한 주권 국가의 행위는 다른 국가 법원의 재판관할권에서 면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살인, 강간, 고문 등과 같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공동의 이익이 위협받게 되고 오히려 국가간 우호관계를 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어떤 국가가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경우, 그 국가는 국제공동체 스스로가 정해놓은 경계를 벗어난 것이므로 그 국가에 주어진 특권은 몰수됨이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지난 1월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일본 정부가 이번 결정문을 송달받을지도 주목된다. 송달이 되지 않을 경우 재산명시 결정은 취소되고, 채권자의 신청은 각하된다. 채권자가 재산조회를 다시 신청해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