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강매에 목숨까지 잃어···소비자 불만 폭발
집 다음으로 비싼 車···소비자 피해에 정부 눈 돌리지 말아야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최근 중고자동차 시장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눈초리가 따갑다.

얼마 전 60대 가장이 중고차 매매 사기단에 속아 자동차를 강매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면서, 중고차 시장을 단속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중고차 허위매물을 근절시켜달라는 호소가 올라오기도 했다.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간 허위·미끼매물, 사고이력 조작, 제멋대로인 가격 산정 등으로 수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자동차는 집 다음으로 일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싼 재산이다. 그만큼 피해 규모도 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중고차 시장은 이렇다 할 규제나 제재조치 없이 무법천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수많은 영세업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차량의 이력이나 가격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는 중고차 품질이나 가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만한 정보를 얻기 힘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확인하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마저도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중고차 딜러들의 온갖 술수에 소비자들은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을 때 두 손 들고 환영한 소비자들이 많은 걸 보면, 그동안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업계에선 우스갯소리로 “현대차가 한국에서 환호 받는 건 처음 봤다”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가능할 지는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 중고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다.

정부를 비롯해 완성차, 중고차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월 상생협력위원회를 출범하고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논의하려 했으나, 중고차 업계가 발족식 전날 불참을 통보하며 무산됐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일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 발족식이 열렸으나 여전히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의 진입을 반대하고 있다.

완성차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서 기존 중고차 매매종사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제품의 경우 구조상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자정작용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을 갖춘다면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중고차 시장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 독점 우려가 낮다고 봤다. 백화점·마트·시장 이용 고객의 목적과 구매행태가 다르듯 중고차 고객도 각자의 니즈가 다르며, 중고차 시장 특성상 유통채널이 다양하기 때문에 시장을 독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표심’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이들의 표를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고차 업계 종사자들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대략 5만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표심을 우려해 무작정 내버려두기에는 그동안 피해를 보고, 앞으로도 입게 될 소비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작년 말 기준 2400만대를 넘겼다. 국민 2.1명당 1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5만 vs 2400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는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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