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올 가을 SMR 개발 위한 예타 신청 방침···정책 변화 여부 주목
"개발 실패한 SMR, 실용성 의문"···탄소 중립관련 원전 역할엔 전문가 '이견'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최근 문재인정부의 원전 정책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국내 신규 원전 건설에는 여전히 선을 긋고 있지만 기술 개발 지원을 강화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원전업계 달래기라는 분석과 함께 탈원전 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가을 소형 원전 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다. 국내 원전 증설은 안전성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추진이 어렵지만 차세대 원전 개발에는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이번 발표가 기존 탈원전 정책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원자력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정부의 탈원전 행보가 무너지고 있다”며 “정부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원자력이라는 큰 대세에 쓸려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소형 모듈 원전(SMR)은 국내에 건설하기에는 너무 작아 국내 건설용은 아니고 수출용으로 봐야 한다”며 “정부가 그동안 명목상으로는 원전 수출을 하겠다고 밝혀왔기 때문에 이번 발표가 보이는 면만 봤을 때 그동안의 기조에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사실 정부가 그동안 원전 수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며 “SMR에 대한 예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온다면 기조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조 변화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라기 보다는 탈원전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력 업계를 정부가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산업 자체를 이번 정부에서 아예 죽이게 생겼으니 그 부담에 내놓은 타협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를 두고 미국과 해외 원전 시장 공동 진출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SMR을 건설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내 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SMR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하나의 용기에 담은 규모 300㎿ 이하 소규모 원전을 말한다. 그동안 비용적인 문제로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탄소 중립을 이뤄낼 청정 에너지원으로 평가받으며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SMR이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정부의 예상 지원 규모나 해외에서의 SMR 투자 규모 등을 봤을 때 정말 이걸 실용화해 전력을 하겠다기 보다는 신규원전시장이 완전히 없어진 원자력계를 달래준다는 면이 가장 밑바탕에 깔린 전제라고 보여진다”며 “SMR이 과거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했던 부분이라 실용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알래스카나 남극, 그린란드 등 오지에서 오랬동안 SMR 관련 시도를 해왔으나 모두 실패했다. SMR 관련 가장 경쟁력 있는 업체인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미국 핵자수함 추진 원자로에 사용하던 소형 모듈 설비를 발전용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해왔다. 80년대 중반부터 650MW 원자로인 APR600을 개발하다 2000년을 전후해 전력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1100MW 용량의 APR1000으로 설계를 변경해 추진을 했지만 비용 상승으로 실패를 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여전히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이지만 차세대 원전 기술 확보에 무게를 실으면서 원전 정책이 기술 개발과 국내 건설을 별개로 놓고 투트랙으로 진행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기술 개발은 사용하려고 하는 것인데 국내 건설을 배제한 원전 기술 개발은 예타를 통과할 수 없다”며 “지금은 세계적으로 원자력이 대세인데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는 땅값이 비싸 못하는 것을 시인한 것”이라고 언급, 기술 개발과 국내 원전 건설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인 고려로 에너지 쇄국정책에 빠져있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제 원자력 없이 탄소중립은 하지 못한다고 인정하고 있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원래 원자력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미국 에너지부를 통해 예산을 증액하는 등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언급, 우리 정부도 어정쩡한 태도를 버리고 탈원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탈원전을 추진했던 국가들도 독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발 씩 물러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으로 대표되는 환경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원전의 역할을 두고는 전문가들간 의견이 엇갈린다. 정 교수는 “우리가 재생에너지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발생하지 않고 전기를 만든다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결국 화석연료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라며 “재생에너지는 너무 비싸고 땅도 부족해 감당이 안 돼 원자력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 확보를 위해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황 교수는 “현 세대 원전 기술인 3세대 대형원전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4세대 기술인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기술은 매우 뒤떨어져 있다”며 “그동안 4세대 기술에 너무 투자를 안 했는데 지속적인 녹색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탄소 중립 시대로 갈수록 원전의 역할이 제한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기술적으로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의 결합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석 위원은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변해 거기에 맞춰 다른 발전기들의 출력 제어가 굉장히 유연해야 한다”며 “기동 시간도 짧고 기동 정지와 출력 변동이 굉장히 유연해야 하는데 가스나 수력, 양수,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원전과 석탄은 출력 제어나 기동 정지가 용이하지 않은 경직성 전원”이라며 “재생에너지와 경직성 전원이 공존하지 못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검증됐다”고 덧붙였다. 원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재생에너지가 주도하는 미래 전력시장에서는 기술적인 이유로 원전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