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조선사는 甲”···B2B 거래서 乙일 수밖에 없는 철강업계
조선업 불황 때 철강업계 고통분담···“조선사는 철강사 불황 외면”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철강제품 가격인상 소식에 완성차·조선 등 고수요 산업군의 수익성 우려가 감지된다. 일각에서는 철강사를 주요 완성차·조선사 수익성 악화의 원흉으로 지목하지만 수익성을 낮추며 수년 간 인상을 자제해 온 철강업계 내부에서는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4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은 포스코·현대제철 등으로부터 공급받은 자동차용 강판가격을 5만원 안팎 수준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철강업계는 올 상반기 톤당 10만원 수준의 가격인상에 합의한 조선업계를 상대로도 추가 인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가전·건설 등에 납품되는 철강제품의 가격이 속속 오르는 추세다.
자연히 철강수요가 높은 산업분야일수록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조선업계는 철강업계가 요구하는 하반기 가격인상에 응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철강업계 입장에서도 가격인상은 불가피한 조치였다. 작년 하반기부터 철광석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국제 철광석 가격은 지난달 12일 톤당 237.57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앞서 역대 최고가는 2011년 2월 기록한 191.70달러였다. 올 초부터 190달러 안팎을 유지해 온 철광석 가격은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최근 보름 여간 200달러를 하회했으나, 지난 3일 재차 반등해 200달러를 넘어선 상황이다. 연도별 철광석 평균가격을 살펴봐도 확연하다. 2018년 70달러를 밑돌던 철광석 평균가격은 2019년 93.44달러를 나타냈으며, 지난해에는 하반기 급등세의 영향으로 108.04달러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과의 5만원 수준의 가격인상은 2017년 하반기 이후 4년 여 만에 이뤄졌다. 10만원 안팎의 조정으로 후판가격도 100만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후판가격은 철광석가격이 크게 올랐던 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철광석 가격 폭등 이전부터 철강업계는 양 업계를 향해 지속적으로 가격인상을 요구했지만, 완성차·조선업계가 거부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협상은 업체와 업체가 하는 것”이라면서 “현대차·기아가 포스코·현대제철과 각각 자동차강판 가격협상에 나서며,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이 후판 공급사들과 개별적으로 연 두 차례 공급가격을 합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톤당 5만원·10만원 하는 이야기들도 대략적인 평균치며 알려진 가격보다 소폭 낮다”면서 “철강사 입장에선 이들이 고객사기 때문에, 이들의 용인 없는 인상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기업 간 거래(B2B·Business to Business)에서 매출의 상당부문의 구매를 책임지는 거래처의 경우 확고한 ‘갑(甲)’의 지위를 누린다. 판매처는 ‘을(乙)’의 입장이 되는 셈이다. 철강사도 물류업체나 원자재 납품업체 입장에선 갑의 지위를 누린다고 할 수 있으나, 차량용 강판이나 조선용 후판을 구매하는 완성차·조선업계를 상대할 때는 철저한 을의 위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폭등 이전부터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탓에 완성차·조선사를 향해 가격인상을 줄곧 요구했으며, 이번 완성차업계와의 가격조정으로 한시름 덜게 된 것이 사실”이라며 “조선경기 불황당시 국내 조선산업 재건에 일조한다는 취지로 인상요인이 충분함에도 상당기간 가격인상을 유예했는데, 조선업계가 추가적인 가격인상과 관련해 인색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 고충이 큰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