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반복되는 ‘선심성’ 금융정책
과도한 경영 개입에 따른 시장왜곡·금융소비자 피해 등 부작용 우려
[시사저널e=김희진 기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또 다시 금융권을 옥죄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를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놓는 한편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앞둔 시점에서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법안 등이 발의되면서다.
지난 1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및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금융지주 대표 연임을 한 번으로 제한하고 총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금융지주 4곳은 모두 회장이 연임 중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사 CEO의 임기와 연임횟수를 정치권에서 관여하는 것이 과도한 개입이라고 말한다. 회장이 임기 동안 이룬 실적 향상이나 경영 능력을 배제한 채 연임과 임기를 정부에서 못 박는 것은 엄연히 사기업인 금융사에 대한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이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앞두고 이자를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 15% 또는 기준금리의 20배 중 낮은 쪽을 최고금리로 정하는 ‘이자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한국은행의 현재 기준금리가 0.50%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준금리의 20배는 10.0%로 법안 도입 시 법정 최고금리는 연 10% 수준으로 적용된다. 다음달 7일부터 법정금리가 기존 24%에서 20%로 인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하된 상한선보다 절반이 더 낮아지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은 만만치 않다. 아직 최고금리 인하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인하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논의하던 당시에도 신용등급이 낮은 취약계층 등이 불법사금융에 내몰리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법정 최고금리가 20% 인하되는 내용이 결정된 이후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는 선제대응을 위해 저신용자 대상의 대출 취급을 축소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정치권의 이러한 ‘금융사 옥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선거 전후로 비슷한 양상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4월 여당이 4·7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이후 시중은행이 대출을 잘 내주지 않은 것이 선거 패배 원인이며, 고통분담 차원에서 금융권의 대출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정치권에서 내놓는 법안들 역시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한 ‘표심잡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이 쏟아내는 ‘선심성’ 금융정책이 시장왜곡은 물론이거니와 금융소비자에게도 피해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서민들의 금융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지만 결과적으로는 금융소비자들의 부담을 더 키우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치권이 이런 역효과를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척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둘 중 어느 쪽이든 시장에는 해악이다. 전자라면 시장 원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금융 입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후자라면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실상 서민 부담을 더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약 제시 때마다 목놓아 주장하는 ‘혁신금융’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정치권의 이런 관치금융 관행부터 혁신하는 게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