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공장·호텔 부지 잇따라 사들여
현금성 자산 3조원, 역대 최대 수준
윤영준 사장, 디벨로퍼들과 협력 의지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현대건설이 디벨로퍼로 거듭나기 위해 잰걸음을 내는 모습이다. 국내 디벨로퍼들과 손잡고 서울 주요 입지의 개발 부지를 잇따라 매입하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의 현금 동원력과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행보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가양동 땅 잇따라 사들여···호텔 부지 매입도 적극적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단순 시공뿐 아니라 개발이나 운용 과정에도 직접 관여하는 디벨로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정비사업 위축과 택지 부족에 따라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현대건설은 디벨로퍼 사업을 위해 시행사는 물론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다양한 파트너와 합을 맞추고 있다. 직접 용지를 매입하기보다는 프로젝트금융투자(PFV)에 지분투자 혹은 신용보강 형태로 사업에 참여했다. 사업 초창기에 자금을 공급해 이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이마트 가양동점 부지 개발 사업이 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현대건설·이스턴투자개발·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은 최근 이마트가 보유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 토지와 지상건물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매 대금은 6820억원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입찰 당시 시장 예상 인수가 5000억원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써내며 지난달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기존 이마트 가양점 건물을 허물고 지식산업센터를 개발할 예정이다.
현대건설이 가양동에 땅을 매입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현대건설은 인창개발과 컨소시엄을 맺고 2019년 12월 CJ그룹이 내놓은 1조원 규모 공장부지를 매입했다. 해당 부지는 10만3049㎡(약 3만평)으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2배에 달한다. 인창개발이 자금조달을 하고 현대건설이 보증을 서는 구조를 짰다. 인창개발은 파주 운정신도시 개발로 이름을 알린 디벨로퍼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이 땅에 지식산업센터와 상업시설 등 오피스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 착공을 목표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예상 사업비 규모는 3조3000억원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홈플러스 점포 매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삼성SRA자산운용이 매물로 내놨던 4개 점포다. 주거시설이나 물류센터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현대건설은 이지스자산운용, 디벨로퍼 디에스네트웍스와 컨소시엄을 맺었다. 비록 롯데건설 컨소시엄에게 넘겨줬지만 현대건설이 후순위로 직접 출자를 결정하는 등 주도적인 태도를 보였다.
호텔 부지 매입에도 공격적인 모습이다. 올 1월 디벨로퍼 웰스어드바이저스와 손을 잡고 서울 강남에 위치한 ‘르메르디앙 서울’을 7000억원에 인수했다. 호텔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재건축하는 방식으로 주상복합을 개발한다는 복안이다. 앞서 현대건설은 하나대체투자운용·알비디케이와 컨소시엄을 맺고 매물로 나온 용산구 이태원동 ‘크라운호텔’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주변에 한남뉴타운 개발 등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고급 주거시설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역대 최대 수준 현금 보유···윤영준 사장 디벨로퍼들과 상생 의지 나타내
개발 부지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던 배경에는 역대 최대 수준의 현금이 바탕이 됐다. 지난해 말 기준 현대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조1868억원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최고 높은 금액이다. 올해 1분기 자본적지출(CAPEX)은 5000억원으로 건설업계 최고 수준이다. 이중 4000억원 가량이 토지매입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막대한 현금과 높은 신용도를 무기로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마트 가양점 인수전에서도 이 같은 현대건설의 자금 동원력이 높이 평가됐다”고 말했다.
디벨로퍼 사업에 대한 의지는 올해 취임한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윤 사장은 지난 3월 대표이사로 정식 선임된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고양시 신원동 삼송지구 내 ‘힐스테이트 라피아노 삼송’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당시 현장엔 문주현 엠디엠그룹 회장, 김병석 알비디케이 회장,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등 내로라하는 국내 디벨로퍼들이 모두 모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의 수장이 모델하우스에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다양한 개발이 가능한 디벨로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같이 상생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