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연내 배달중개서비스 출시 예정···우리은행, 편의점 택배 픽업 서비스 추진중
실제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변화 위한 새로운 시도, 불가피”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는 은행권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생활밀착형 서비스 경쟁에 뛰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 발표 이후 은행권에서는 비금융 서비스 진출에 대한 다양한 우려들이 제기돼왔으나 일부 시중은행들은 과감히 배달중개서비스, 택배 픽업 서비스 등을 새롭게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플랫폼 사업자들의 높은 시장 점유율 등으로 인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지만 은행들은 새로운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두고 앞으로도 변화를 추구해 나갈 방침이다.
◇신한은행, 음식주문 중개 플랫폼 구축에 약 140억원 투자
2일 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오는 12월쯤 배달 중개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가 ‘디지털금융 규제·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자 가장 적극적으로 발빠르게 움직인 은행 중 하나다. 애초에 7월 오픈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왔으나 보다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출시일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디지털금융 규제·제도 개선방안은 은행의 플랫폼 비즈니스 진출 허용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신한은행은 성공적인 플랫폼 구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도 단행할 방침이다. 지난달 신한은행이 공고한 ‘음식주문 중개 O2O플랫폼 구축’ 용역 입찰 내용에 따르면 사업예산안은 총 137억7400만원 규모에 달한다. 이중 40억원은 기반 인프라 운영비(5년 기준)로 사용되며 약 100억원 가량이 순수 개발비로 들어갈 예정이다. 배달의 민족, 배달통 등 기존 배달중개서비스의 초기 사업비용은 수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2014년 한국배달음식업협회가 자체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들였던 비용 10억원과 비교해도 10배 이상 큰 규모다.
신한은행은 배달중개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특화 금융서비스를 개발해 나갈 전망이다. 당장의 수수료 수익보다는 고객 유치, 가맹점·라이더·고객 데이터 확보 등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비정형 데이터를 신용평가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고객 유치뿐만 아니라 가맹점, 라이더 분들의 니즈까지도 맞춘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하반기 편의점 택배 픽업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고객이 우리은행의 ‘원(WON)뱅킹’ 앱 등을 통해 가까운 편의점을 지정하면 해당 장소로 택배가 배달되는 시스템이다. 우리은행 역시 별도의 수익보다는 고객의 편의성 증대를 목적으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고객의 생활과 밀접한 택배를 매개로 고객들의 앱 이용 시간이 늘어나는 부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한국화훼농협과의 제휴를 통해 올원뱅크에서 꽃다발, 화환, 난 등을 주문하는 전국 꽃배달 및 꽃 정기구독 서비스 ‘올원X플라워’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며 농협물류와 연계한 택배 접수 및 배송 서비스도 선보일 방침이다.
이외에도 하나은행은 개인간 중고차 직거래 플랫폼 ‘원더카 직거래’를 출시하고 오토금융 등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며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2019년말부터 운영 중인 알뜰폰(MVNO·가상이동통신망) 서비스 ‘리브 엠’에 집중할 예정이다.
◇은행 공적 역할은 한계점···비금융서비스 시도 지속 확대 전망
은행들의 이러한 생활밀착형 서비스에 대해 업계에서는 여전히 부정적 전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존 플랫폼 사업자들의 선점 효과를 이겨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부터 은행업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와는 별개로 은행의 배달중개 서비스가 기존의 사업자들을 제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에 예상 외로 잘된다고 해도 분명히 대규모 반발 여론에 부딪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은행업의 태생적 한계”라며 “배달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도 마찬가지로 은행이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면 업권 이익 침해라는 비판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과거 은행들이 부동산 중개 서비스를 시도하려고 했다가 포기한 것도 공인중개사분들의 반발 때문”이라며 “전국에 수많은 영업점을 바탕으로 시도해볼만한 사업이 많지만 쉽게 타 업권 진출에 나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 역시 “기본적으로 은행업이라는 확고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은 내부 직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며 “내부 분위기도 사업 검토시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전망들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의 생활밀착형 서비스 진출은 조금씩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패를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현재의 변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모든 은행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가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겠지만 한 명씩 두 명씩이라도 그 사용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하나 둘 쌓이는 데이터를 취합하고 연계함으로써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시장조사, 수익성 조사 등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실제 서비스를 출시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며 “어차피 은행 전체로 따지면 사업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비스가 성공을 못해도 큰 타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쓸데 없어보인다고 아무 것도 안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