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재팬' 운동, 업종 따라 분위기 차이···대체재 유무가 중요
"2년 사이 많은 변화···대외상황 따라 불매운동 양상 달라질 수도"
[시사저널e=이호길 인턴기자] "일본 맥주는 잘 안 마셔요. 특정 제품을 사는 편은 아니고 할인 많이 하는 걸 사는데, 일본 맥주는 특별히 생각 안 해봤네요."
지난 2일 오전 9시 강남의 한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온 50대 주부 강모씨의 말이다. 그는 '불매운동 영향으로 일본 맥주를 사지 않느냐'는 질문에 "확실히 그런 게 있다. 그런 이유로 잘 안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날 마트는 이른 시간부터 장을 보러 온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강씨는 주류 코너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맥주를 신중하게 살펴봤다. 가격 정보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맥주를 고른 끝에 한 외국 브랜드의 500ml 캔맥주를 카트에 담았다.
사실 이곳에서는 일본 맥주를 사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트 측은 불매운동이 벌어진 이후 아사히와 기린 등 일본 맥주 재고를 들이지 않고 있다. 마트 관계자는 “일본 맥주를 특별히 찾는 손님도 별로 없다. 불매운동이 2년 정도 됐지만, 아직까지 판매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처에 위치한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도 일본 맥주를 취급하지 않고 있었다. 2년 전부터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점장 A씨는 “불매운동 이후로 찾는 손님이 없어서 안 들여놓는다. 가끔 단골들이 찾기는 하는데, 그러면 몇 개만 따로 주문해서 준비해 놓는다. 예전에는 일본 맥주를 찾는 손님이 꽤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본사 차원에서 일본 맥주를 팔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찾는 사람이 없어서 안 들여놓는다. 아사히나 기린은 그래도 수요가 어느 정도 있으니까 판매를 다시 시작한 매장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2019년 7월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다음달로 2년째를 맞는다. 이른바 ‘노 재팬’(No Japan) 운동은 당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반발한 국내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일어났다.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 일본 기업 목록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이 운동은 빠르게 확산됐다.
주류는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았다. 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맥주는 불매운동의 주요 타깃이 됐고, 매출도 크게 떨어졌다. 아사히 맥주를 수입하는 롯데아사히주류의 2018년 매출액은 1247억원이었지만, 지난해는 173억원을 기록해 감소 폭이 약 86%에 달했다.
의류도 불매운동의 타격을 받았다.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유니클로 일본 본사 임원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고, 결국 강남점과 명동점 등 주요 매장이 폐점했다.
주류, 의류와 달리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도 있다. 바로 게임이다. 특히 소니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의 인기가 뜨겁다.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의 게임 전문매장 직원은 “플레이스테이션5는 오프라인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다. 온라인 예약판매를 통해서만 살 수 있는데, 인기가 많고 사람이 몰리니까 소니 측에서 오프라인 판매를 막았다. 코로나 영향이 있는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매장에는 몇몇 손님이 방문해 게임 CD 등을 고르기도 했다.
게임 인기 요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늘어난 점이 꼽히지만, 불매운동이 한창일 때도 일본산 게임기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이처럼 업종에 따라 불매운동 희비가 엇갈리는 건 대체 품목 유무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유니클로를 대체하며 무신사의 인기가 높아졌고, 일본 맥주 대신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반면 게임은 불매운동의 상징으로 덜 부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불매운동이 장기화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소비자 반응도 나온다. 이날 강남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을 찾은 중년 여성은 “(불매운동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 싫다. 사실 어느 나라 제품이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냐”라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한다고 해도 (해당 기업 매출이 떨어지면) 한국 직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데 정말로 이게 유익한지도 잘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불매운동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점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2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통령이 일본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불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절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국민의 생각이 다 똑같지 않고, 외교나 국제 관계에 따라서도 불매운동 양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