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14개 스팩 상한가 이후 무더기 급락···투자자 손실 급증에 시장교란 의혹도
스팩 소형화로 우선주처럼 시세조종 취약···국내증시 활황에도 스팩 공급은 감소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최근 급등세를 보였던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SPAC) 종목들이 대부분 급락하면서 뒤늦게 뛰어든 투자자들의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예고된 결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통상 스팩은 기업과 인수합병을 전후해 주가가 오르지만 최근 급등했던 스팩들은 합병과는 무관한 종목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증시에서 종종 일어나는 우선주 급등사례처럼 국내 스팩 규모가 대부분 작고 종목수가 많지 않아 시세조종 세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 무더기 상한가 후 급락···‘예고된 결말’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급등했던 스팩종목들의 주가가 이날 대부분 두 자릿수대 급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전날 상한가를 기록했던 하이제6호스팩은 하한가로 장을 마감했고 전날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던 하나머스트7호스팩 역시 이날 –27.7% 급락한 채 장을 마쳤다. 유진스팩6호 등 다른 스팩종목들 역시 대부분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최근 스팩시장에는 투자자들의 매수자금이 몰리면서 스팩종목들의 주가급등이 속출했다. 특히 21일 상장했던 삼성스팩4호는 24일부터 31일까지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주가가 공모가(2000원)의 5배인 1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날에는 무려 14개에 달하는 스팩이 상한가를 기록한 채 장을 마감했다. 전날 국내 코스닥에서 상한가 종목이 18개였는데 78%를 스팩이 차지한 것이다.
삼성스팩2호처럼 기업과 합병이 추진되면서 주가가 오른 스팩도 있었지만 최근 주가가 급등했던 스팩 대부분은 합병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종목들이었다. 전날 상한가였던 14개 스팩 가운데 기업과 합병이 진행되고 있는 스팩 역시 삼성스팩2호 1개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날 스팩들의 주가가 대부분 무너지면서 일부 시세조종 세력에 의해 국내 스팩시장이 교란됐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한국거래소 역시 삼성스팩4호와 관련해 특정계좌에서 거래가 쏠리는 것을 포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거래소는 28일 삼성스팩4호를 투자경고종목 지정했지만 전날까지 상한가 행진이 이어졌고 결국 이날 거래를 하루 정지시켰다. 삼성스팩2호 역시 같은 이유로 이날 거래가 하루 중지됐다.
◇ 우선주처럼 시세조종 취약···공급부족 의견도
일각에서는 국내 스팩시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주가 급등락을 놓고 제2의 우선주 사태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삼성중공업 우선주나 최근 한화투자증권 우선주가 보통주의 몇 배 수준으로 급등했던 사례처럼 특정세력이 유통물량이 적은 주식을 집중 매집함으로써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 상장된 58개 스팩들은 공모규모가 50억~100억원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형스팩은 최근 11년 만에 유가증권시장에 공모규모 960억원으로 상장한 NH스팩19호 하나뿐이다.
이는 2010년 스팩제도 도입 당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던 3개 스팩이 모두 합병기업을 찾지 못하고 상장폐지되면서 사실상 국내 증권시장에서 스팩이 중소형기업 전용 상장루트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내증시 활황과 비교해 국내 증시에서 신규 상장되는 스팩 수가 부족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국내 아파트처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장이 교란되기 쉬운 구조라는 해석이다.
미국 스팩 전문사이트인 스팩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에만 248개의 스팩이 상장했고 올해는 벌써 330개의 스팩이 IPO에 성공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9년 30개 스팩이 신규상장했지만 지난해에는 19개에 불과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신규상장된 스팩은 11개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