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이뤄진 납품가 인상···철광석 가격 폭등 전부터 인상요구는 계속돼
“배터리 내재화 추진, 가격협상 유리하려는 목적도”···업체 간 가격경쟁 유도

그래픽= 이다인 디자이너
그래픽= 이다인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자동차강판 납품가격 인상을 용인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고객사의 배려도 비춰지지만, 4년 만에 이뤄진 이번 가격인상이 있기까지 철강사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완성차업계와 거래량이 폭증하고 있는 배터리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반응이다.

이번 가격인상으로 포스코·현대제철 등은 현대차·기아 등에 톤당 5만원 안팎의 인상된 가격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작년 초 톤당 80달러 수준이던 철광석가격은 작년 하반기부터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지난달 14일 237.57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폭등에 따른 철강사 부담이 이번 가격인상의 계기가 됐지만, 철강사의 가격인상 요구는 폭등 이전부터 이어졌다.

납품가 협상은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실시된다. 협상주체는 개별 법인이다. 완성차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차·기아 등이 개별적으로 포스코·현대제철과 계약을 맺는 구조다. 2017년 하반기 기존보다 인상된 가격으로 납품가 협상을 체결한 철강업계는 지난 4년 여 동안 단 한 차례도 올려 받지 못했다. 일부기간에는 소폭 낮은 금액에 강판을 납품했을 정도였다.

철강사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가격인상 소식을 두고 철강업계 내부에서 “진작 올렸어야 했다”는 푸념이 나오는 까닭이다. 사정이 이럼에도 철강사들은 의견표출이 쉽지 않았다. 현대차동차그룹이 거대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기업 간 거래(B2B·Business to Business)에서 철강사는 철저한 ‘을(乙)’의 지위다.

현대차·기아 등이 자동차강판 매출비중의 90%를 차지하는 그룹사 현대제철은 더욱 그러한 위치다. 현대제철에 비해선 나은 상황이지만 포스코도 매한가지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가격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납품가격 인상을 꺼리기 마련이다. 비단 철강업계뿐 아니라 다른 부품공급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업계 전반이 유사하다.

완성차업계와 거래량이 폭증하고 있는 배터리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완성차 패러다임이 내연차에서 전기차로 변화함에 따라 거래량이 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금년 1~4월 글로벌 등록차량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65.9GWh다. 전년동기 대비 145.9% 증가했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사용량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갖는 의미는 크다. 배터리는 내연차의 엔진에 해당한다. 전기차 원가비중의 40% 안팎도 배터리다. 탑재되는 부품들 중 가장 높다. 차체 하중 측면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차세대 모빌리티 시장이 본격화됨에 따라 기존 완성차업체와 배터리업계가 헤게모니 싸움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이유다. 실익을 나눠 갖는 구조인 셈이다.

사업적 측면에서 갑은 완성차업체다. 배터리를 구매해 전기차에 탑재하는 주체이다. 가격부담이 크다보니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납품가 협상은 자동차강판 등 기존 부품업계와의 협상보다 강경한 자세를 고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25년을 전후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주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는 까닭도 이 같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특정 배터리업체와 합작사(JV)를 설립하는 방식의 내재화가 주를 이룬다”면서 “JV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파트너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수급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트너업체 외에도 복수의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해 배터리회사들 간 가격경쟁을 유발하는 데, JV를 통해 완성차업체가 경쟁에 참여함으로써 전체적인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 또한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기존 시장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에서도 글로벌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유력시되는 폭스바겐그룹의 전략도 유사하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및 중국의 CATL와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또 다른 파트너 업체로 스웨덴의 노스볼트를 포함시켰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그룹이 지분투자를 감행하고 JV설립을 함께 한 파트너다. 최근에는 각형 중심의 배터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파우치형 중심의 LG·SK를 압박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이 핵심 거래처였다. 그룹 최초의 전기차 전용플랫폼 E-GMP 배터리 공급사도 이들이 번갈아가며 차지했다. 1차는 SK이노베이션, 2차는 LG에너지솔루션, 3차는 다시 SK이노베이션이 차지하는 형국이었는데 2·3차의 경우 단독수주가 아닌 중국 CATL에도 물량을 배분했다. 삼성SDI와의 협업을 추진 중이며, LG와 동남아시아 시장대응을 위해 인도네시아 JV설립이 유력시된다.

미국 기업들도 유사하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는 SK이노베이션과 각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동시에 다른 업체로부터도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현재 전세계 전기차 시장 판매량 1위를 기록 중인 테슬라도 파나소닉과의 독점거래를 마치고 LG에너지솔루션·CATL 등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으며, 삼성SDI와 신규거래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수주산업인 까닭에 마진율을 높게 책정할 수가 없는 분야”라면서 “심화되는 배터리업계 치킨게임과 완성차업계와의 가격협상을 하면서 동시에 수익성도 창출해야 하는 것이 업계 공통의 숙제가 될 전망이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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