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매판매지수 통계작성 이후 최고치···정부 “긍정적 신호”
고소득층 수요 분야 증가세 두드러져···“양극화 심화 지표일 뿐”

서울 중구 명동 식당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 식당가 모습.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코로나 사태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정부는 경제 회복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소비 증가가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나타나 양극화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지적과 함께 팬데믹 상황이 계속돼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엔 아직은 섣부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매판매지수는 계절조정 기준 120.5로 3월(117.8)보다 2.3% 증가했다. 1995년 통계작성 이후 최고치이다. 소매판매지수는 백화점, 슈퍼마켓, 자동차 판매점 등의 소매 판매 실적을 조사해 지수화한 것이다.  

품목별 판매를 보면 화장품 등 비내구재가 2.4%, 의복 등 준내구재 4.3%, 통신기기·컴퓨터 등 내구재가 0.7% 증가했다. 면세점,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등 모든 업종 형태에서 판매가 늘어났다.

정부는 소비 심리 회복이 향후 경제 흐름에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부분의 주요지표가 위기 전 수준을 넘어서며 회복세를 지속하고 있다”며 “수출 및 심리 회복 등은 향후 지표 흐름에 긍정적인 요인이나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과 공급망 차질 우려 같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그동안 소비가 상당히 억눌려 있었고 백신이 풀리면서 경기 회복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생산 활동에 충격을 덜 받은 축에 속하는데 제조업쪽에서 전 세계 수요를 많이 수출하면서 심리가 개선된 부분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 자체가 좋은 상태가 아닌 과거보다 개선됐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지난해 대면소비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지표상 개선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소비 개선 지표를 긍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일반적인 대면 소비 자체가 좋아진 게 아니고 소비 증가 추세를 보면 백화점이나 명품 등 고소득층이 주로 찾는 분야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기재부가 발표한 5월 최근 경제동향에 담긴 내수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8% 증가했다. 국내 카드 승인액은 1년 전보다 18.3% 늘었다. 백화점 매출액과 카드 국내 승인액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보고서에서 소비에도 계층 간 양극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소득에 관계없이 대면 소비 부분은 감소했다. 하지만, 고소득층은 대면소비 감소로 생긴 소비 여력을 자동차·가전·가구 등 내구재 구매에 나선 반면, 중산층은 내구재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확대했다.

성 교수는 “늘어난 소비 지표는 해외여행을 못하면서 국내 소비가 이뤄진 부분”이라며 “소득이 있는 계층이 소비하는 품목과 연관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소비 지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소득이 높은 계층과 낮은 계층의 차이가 있는 회복이라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정보 기술(IT) 쪽 게임업체의 경우는 호황을 맞아 직원 연봉을 수천만원씩 올려주는 반면 자영업 쪽은 사업 자체를 못하게 해 경제 주체별 체감 정도가 많이 다른 상황”이라며 “현재 자동차가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빚는 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수요가 줄 것으로 봤는데 서비스업 소비를 못하는 사람들이 공산품 소비쪽으로 옮겨가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이 팔리면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서비스 산업의 외식이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해외여행을 다 못하게 되면서 남은 돈을 공산품 소비로 전환했다”며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비싼 물건에 수요가 많이 몰리는 현상은 글로벌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 상황에서 경제가 완전히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긴 섣부르다는 분석이다. 성 교수는 “작년 최악의 상황보다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다 개선됐다 보기는 어렵다”며 “점차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면서 추가적인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고 이 부분이 금리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불안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소비가 개선되는 것은 사실이고 코로나 상황이 개선되면서 좀 더 나아질 수 있으나 소비지표로 나타난 소비 개선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본격적인 회복세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백신 보급도 늦고 코로나가 다시 크게 번질 수도 있다”며 “일각의 우려대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와서 환율이 요동칠 수도 있어 장기적인 추세나 전망을 확신하기엔 어려운 불확실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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