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만으로 세계 1위 오른 중국···韓 주력해온 유럽시장에 도전장 내는 분위기
빈약한 韓내수 대체 미국시장···유럽·동남아 등 중국업체와의 경쟁 심화될 듯
“한국·중국과 달리 자국협력 주력한 日···전고체 상용화로 반전? 쉽지 않아”
[시사저널e=김도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한·미 양국의 차세대 모빌리티 협력이 보다 강화된다. 시장점유율이 일정수준 고착화된 반도체·완성차보다 특히배터리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한국·중국 중심의 양강체제로 개편되고, 3강 체제의 한 축이던 일본의 약세가 점쳐진다.
기존 배터리업계는 한·중·일 3강 체제로 유지됐다. 치킨게임을 거듭한 끝에 ‘3강 4중’ 체제로 거듭났는데 상위 7개 업체 모두 한·중·일 업체들이다. 3강에는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중국의 CATL, 일본의 파나소닉이 포함된다. 4중에는 삼성SDI·SK이노베이션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 업체 각 1곳이 이름을 올린다. 세 나라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95% 이상을 차지한다.
글로벌 3대 전기차 시장으로는 유럽·중국·북미 등이 꼽힌다. 전기차 전환속도로 보면 미국이 가장 느리다. 내연차 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 격차를 좁히는 데 실패한 중국은 전기차·배터리 시장전환을 빠르게 꾀했다. 유럽은 강력한 환경규제를 바탕으로 전기차 전환을 유도 중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관련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 배터리업계는 유럽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중국은 방대한 내수시장과 당국의 차별적 보조금정책 등에 힘입어 판매량을 늘려왔다. 독일에 공장을 짓고 있는 CATL을 중심으로 중국 배터리업계의 유럽공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유럽 자체적 배터리산업 육성의지가 더해지면서 국내 업계의 입지가 위협받았던 게 사실이다.
미국과 굳건한 배터리 동맹이 체결되면서 안정적인 대응이 가능할 전망이다. 미국의 양대 완성차 브랜드인 제네럴모터스(GM)과 포드는 각각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과 배터리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거나, 설립키로 합의했다. LG와 SK는 JV와 별개로 자체적인 현지 배터리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조지아공장은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결과적으로 급성장하게 될 북미시장에 안정적인 배터리 판로를 마련하고, 위협받고 있는 유럽시장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유럽·중국 등에 이어 4번째 전기차 시장으로 각광받는 동남아시아 시장공략 거점을 인도네시아에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양사의 현지 JV설립까지 거론됨에 따라 북미·유럽·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한 K배터리의 영향력 확대가 점쳐진다.
내수만으로 세계 1위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 역시 한국업체들이 장악하는 유럽시장과 동남아시아 시장공략에 야심을 키우는 중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은 (모빌리티 경쟁에서)이길 것이라 생각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고 언급할 정도로 양국의 경제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국 배터리업계의 미국진출은 현실적인 제약이 뒤따른다.
한·중 배터리업계는 각각 북미·중국시장을 거점으로 유럽·동남아시아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양국의 이 같은 영향력확대와 대비되는 곳은 일본이다. 한국과 더불어 소형 전지시장 때부터 축적된 기술력을 자랑하지만 시장점유율은 높지 않다. 한 때 파사소닉이 테슬라에 독점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현재는 LG에너지솔루션·CATL 등에 밀려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중위권 업체의 도전을 받는 실정이다.
일본 역시 내수가 큰 시장이다. 글로벌 5대 완성차 시장으로 꼽히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도 5위권의 시장규모를 유지할 요량이다. 일본 배터리업계는 토요타·혼다 등 자국의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토요타와 파나소닉은 세계 최초로 전고체를 상용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다.
중국과 달리 일본 배터리업계의 미국진출은 용이하다. 파나소닉은 미국 현지에 생산기지도 갖췄다. 다만 위상은 한국기업이 앞선다. 미국의 주요 완성차 브랜드의 배터리 파트너도 한국기업들이 차지했으며, ‘제2의 테슬라’를 꿈꾸는 주요 스타트업체들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파나소닉 독점 공급처였던 테슬라는 LG에너지솔루션·CATL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테슬라는 원통형을 고집한다. 확대되는 물량 수혜도 삼성SDI가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 나올 정도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배터리 공급선을 다변화하기 직전, 파나소닉의 배터리 공급 속도를 공개적으로 힐난한 바 있다. 당시 파나소닉이 자국 업체들과의 배터리 협력을 구축하는 것에 마뜩찮아했던 심기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내 협력은 강화되지만, 더 큰 시장에서 일본 업체의 영향력은 점차 하회 중이다.
국내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고해진 양국의 모빌리티 파트너십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의 한국과 중국의 양강구도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다”면서 “이는 곧 일본의 위축을 의미하는데, 자국기업 육성의지가 강한 중국과 한국기업 영향력이 큰 유럽·미국에서 일본이 활약할 여지가 적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업계관계자는 “일본은 전고체를 무기로 반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라면서 “다른 기업들 역시 전고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의도대로 글로벌 시장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는 “결국 한국·중국 중심의 배터리 시장재편이 속도를 낼수있도록 오늘날 파나소닉의 3위 자리를 한국 또는 중국 기업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