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 ‘고객 대면의무’ 면제·음성 AI 활용 허용···디지털 영업 활성화 기대
중장년 설계사, 영업 방식 변화 부적응 우려···보험사 간 양극화 심화 전망도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국내 보험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보험 설계사들이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대면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사들의 제판 분리 시도가 점차 늘어나자 고용 안정에 대한 설계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정부의 비대면·디지털 영업 활성화 정책은 보험 판매 채널의 변화를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특히 인바운드(In-Bound) 영업의 비중이 큰 디지털 채널의 성장은 설계사들의 생존권을 크게 위협할뿐만 아니라 업계 양극화를 보다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비대면‧디지털 보험모집 규제개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보험업법 시행령 등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모집방식의 비효율성을 낮추는 동시에 대면‧전화‧온라인 등 다양한 판매 채널이 상호결합, 보완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보험 설계사들의 ‘고객 대면의무’를 면제하는 것이다. 기존에는 대면채널 보험설계사가 반드시 1회 이상 소비자를 대면해 보험계약의 중요성을 설명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대면 설명 없이 전화 설명만으로도 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규제 유연화를 상시화하는 조치다.
또한 비대면 영업을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모바일 청약시 적용됐던 반복서명 절차도 폐지한다. 그동안 보험계약 서류작성 등 청약절차를 모바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작은 휴대폰 화면 등에서 모든 서류에 반복해서 전자서명을 하는 불편을 겪었으나 앞으로는 청약절차 시작시 1회만 전자서명을 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추가로 보험설계사가 전화로 보험을 모집할 때 표준 스크립트를 모두 직접 낭독하는 대신 음성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될 예정이며 전화 설명과 모바일 청약을 함께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모집 방식’도 허용될 전망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정안을 두고 보험 설계사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음성 AI 등의 활용으로 인해 업무의 편의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디지털 영업 활성화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TM(전화 모집) 영업보다는 대면 영업의 비중이 높은 중장년 보험 설계사들의 경우 제도 개선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보다 영업 방식 변화에 따른 피해가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보험설계사는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보험업계 역시 종사자들의 고령화가 점차 진행되고 있다”며 “아무래도 연령이 있는 보험설계사들은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추진 중인 제도 개선안 등을 TM, 디지털 영업 활성화를 위한 방안들인데 대면 영업을 주로 해왔던 설계사 분들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빅3 생명보험사(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소속의 설계사 중 5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기준 빅3 생보사 7만949명 중 50세 이상(3만6009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75%였으나 이듬해 54.34%(7만666명 중 3만8402명)로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채널의 성장이 대형 보험사와 중·소형 보험사 간의 양극화를 보다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면 영업과 TM영업은 설계사들이 고객들에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는 ‘아웃바운드’가 주를 이루지만 디지털 영업은 고객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보험사를 찾는 ‘인바운드’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인바운드의 경우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는 대형사들이 보다 영업에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6년 2.9%에 불과했던 손해보험업계 디지털 인바운드 영업의 비중은 지난 2019년 5.2%를 기록하며 5%를 넘어섰으며 지난해 6.3%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다만 상품 구조가 보다 복잡한 생명보험업계의 경우 아직 디지털 인바운드의 비중이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보험과 같이 단순 계산이 가능한 상품은 앞으로 비대면 판매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전문 보험사들의 등장 등 변수로 인해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보험사들이 아무래도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